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리더십 상처 내는 불·탈법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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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 정부 고위직 103명의 재산이 공개됐다. 재산공개제도는 1993년 실시된 이래 공직자의 기본 요건을 검증하는 기초 자료였다. 공직을 이용한 축재를 예방하는 역할도 해 왔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확립된 상식은 ‘재산이 많다는 게 문제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청와대 사람들의 평균 재산 규모가 35억원으로 노무현 사람들의 13억원보다 많다는 식의 지적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문제는 축재 과정의 불·탈법 여부다. 불·탈법이 있다면 어느 수준인가, 투기성과 고의성은 어느 수준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고 해도 청와대 사람들의 재산과 관련한 평균 도덕성은 실망스럽다. 우선 청와대 수석급 8명 가운데 4명이 불·탈법을 저질렀다.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의 남편과 이동관 대변인은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 해당 농지를 소유할 수 없게 돼 있는 농지법을 어겼다. 곽승준 국정기획수석과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은 한때 자기 소유로 돼 있는 땅에 실제로 살지 않으면서 산 것처럼 위장전입을 했다. 주민등록법 위반이었다.

청와대 수석의 반이 크든 작든 현행법을 위반한 건 국가 공동체를 선두에서 끌어가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상처를 주는 일이다. “자체 조사 결과 법적·도덕적으로 큰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우길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걸러지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불·탈법의 수준에서 본다면, 위장전입 사안은 곽·김 수석이 이미 불법 상황을 해소한 데다 법 위반이 있던 시점이 학생 때인 1980년대였으며 자기 의지보다 부친의 의지가 강했다는 소명이 나름대로 정상참작의 여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농지법 위반 사안은 박 수석·이 대변인이 “내가 농사짓지 않더라도 공동 소유자가 농사를 지으면 불법이 아닌 줄 알았다”는 군색한 이유를 붙여 현재 불법 상태에 있다. 특히 박 수석은 남편의 합법성을 주장하기 위해 재산 공개 나흘 전 공동 소유자가 현지 농민들에게서 뗀 이른바 자경확인서를 건네받아 청와대에 제출함으로써 서류 조작 의혹까지 받고 있다. 교수 출신의 박 수석은 임명 당시 제자 논문의 표절 의혹까지 받았던 주인공이다. 청와대는 이런 문제들의 경중을 정밀하게 가려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