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홈뉴패밀리>10.차례음식도 형제들이 분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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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년간 땀흘려 거둬들인 햇곡식으로 조상의 은덕을 빌고 가족의안녕을 기원하는 추석.「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듯 우리 민족에게는 최대의 명절인지라 이날을 맞는 마음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추석 차례상에 올리기 위한 음식을 만드는 일은 힘든 가사노동의 개념보다는 수확에 대한 감사의 의식(儀式)으로 여겨져왔던게 우리의 풍습이었다.
하지만 산업사회의 고도화에 따라 전통보다는 실용의식이 앞서면서「차례음식 분담」이라는 새 풍속이 생겨나고 있다.
송편.어적.산적.나물등 음식을 며느리들이 각각 분담,장만한뒤추석날 아침에 모여 차례상에 올리는 실용주의 가정문화인 셈 이다. 가정주부 金모(35.서울서초구잠원동)씨는 올 추석날 아침그 전날 준비한 산적과 파전을 싸들고 서울 상계동의 시부모댁을향할 예정이다.
金씨와 그의 동서들이 이같은 신형태의 차례상 차리기를 시작한것은 1년전부터.시부모만이 생활하는 아파트가 비좁아 며느리들이모두 모이는 것 조차 불편함을 느끼던 차에 음식 준비중 동서간에 부엌일을 둘러싸고 약간의 갈등이 생기면서 아예 음식을 분담키로 한 것.
『어찌보면 세태가 야속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저희는 현실을인정하기로 했어요.서로 불편함을 느끼기보다 차라리 터놓고 불편을 해소하자는 생각이었지요.덕분에 이후부터는 갈등 한번 없었어요.』 金씨는『시부모님들이 처음엔 반대했지만 곧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고 전했다.
아예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게 음식분담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큰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는 朴모(67.여.서울동작구사당동)씨는 추석이나 제사를 앞두고 둘째.셋째 며느리에게 산적.나물.생선등 차례음식을 나누어 해오라고 지시한다.
그는『모여서 일을 한다는게 비효율적일 뿐더러 7명이나 되는 손주들이 함께 와 북적거리면 어수선 하기만 한데다 일하는 짬짬이 갑자기 불어난 대가족의 세끼 식사를 챙기는 것도 수월치 않아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대신 朴씨는 큰며느리 와 송편.국.과일등을 준비한다.
하지만 이같은 새 풍습이 원로세대,특히 남성들의 시각으론 못마땅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년퇴직한 전직 교사 南모(69.서울용산구청파동)씨는 명절 때마다 반드시 아내와 3명의 며느리들이 모여 음식장만하는 것을고집한다.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야하고 그 정성은함께 모여 마음을 나누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싹튼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아직까지 원로세대에는 「많은 자손이 모여 항상 북적거리는 가운데 차례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조상에 대한 도리」라는 관습이 우세한 것 같다.
〈金鍾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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