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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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32) 논둑길에서 튀어오른 개구리가 풀을 흔들며 지나갔다.명조가 걸음을 멈추었다.
『개구리야.개구리.』 아이가 멈칫한다.
말해놓고 나서 은례는 혼자 웃었다.미친년 같네.누가 볼까 남세스러워서.
남편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개구리 무서워서 어찌 살까.그가 그렇게 말했었다.그때 처음 만나서 얼굴을 보았을 때,집앞을 걸어나오며 오빠가 말했었다.
『인사라도 하거라.』 어머니 뒤에 서 있는데 개구리가 뛰었다.놀라는 동생을 보며 오빠가 말했었다.
『개구리보다는 자네가 무섭기 바라네.』 그게 아버지의 말이었다.오빠가 한 말이 아니었다.그 집 귀신 되는 건데,세상이 다아는 친일판데 훈장집 딸 거기 보내서… 무슨 영달 있소.
내려다보는 아이의 정수리가 하얗다.명조야.네가 커서 이 아픈엄마 마음 원수 갚아야 한다.그래야 한다.
남편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그랬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니?』 아니다.아니라고 은례의 안에서 말한다.이렇게 산 것이 어떻게 네탓이냐고.
『엄마는 네가 있어서 이렇게 살았단다.너 없이 어떻게 이 세월을 견뎠겠니.』 넘실거리는 보리밭 사이로를 내다보며 은례는 입술을 악문다.요즘처럼 이 아이가 힘이 된 적이 있었던가.내려다보는 아이의 어깨가 스스로 생각해도 애처롭다.
이 땅에 피는 꽃이 있고 이 땅에 자라는 나무가 있는데 내가어디 있겠소.
산 저쪽으로 남편의 말이 들려오는 듯싶다.
바라보이는 하늘도 다 캄캄하다고 생각한다.햇빛은 너란다.하늘이 아니라 너란다.명조야.서글픔 때문에 힘이 빠져나가면서 은례가 말했다.
『아빠가 오기는 올거 같니?』 저만큼 가는 아이가 대답이 있을 리 없다.
『아빠가 올 걸 믿는단다.』 아이가 알아들을 리 없다.그러나이렇게 살아온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세월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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