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욕설 습관적으로 뱉으면 이혼 사유"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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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40)씨는 1999년 남편 김모(43)씨와 결혼했다. 결혼 당시 김씨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여파로 빚이 많았다. 이에 박씨 부모는 김씨 빚 가운데 1200만원을 갚아주고 5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도 얻어줬다. 또 박씨는 결혼 후 3개월째 부터는 건강이 좋지 않던 김씨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김씨가 빚 때문에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못하자 직접 의상실을 운영해 돈도 벌었다. 덕분에 김씨는 9000만원에 달하던 빚을 결혼 1년만에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김씨는 결혼 초기부터 습관적으로 아내에게 심한 욕설을 해대는 버릇이 있었다. 참다못한 아내 박씨는 결혼 4년차 되던 2003년 “욕을 하는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대응했고 김씨는 “앞으로 절대 욕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하지만 김씨 욕설의 수위는 그 후에도 점점 더 높아졌다.

이 와중에 박씨는 김씨의 서랍에서 재수학원 교재와 전문대학 학생증을 발견했다. 국내에서 일류 대학을 다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던 김씨의 말을 믿고 결혼했던 박씨는 심한 충격과 함께 김씨에 대한 믿음을 잃어 갔다. 한편 김씨는 2003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박씨가 “왜 대답을 하지 않느냐”며 운전을 하던 김씨의 머리를 건드린 일이 있었다. 김씨는 아들이 보고 있는데도 박씨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급기야 차에서 내려서는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도 박씨의 가슴을 밀어 넘어뜨리고 박씨가 일어나면 다시 넘어뜨리면서 욕을 해댔다.

심한 모멸감을 느낀 박씨는 6살된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김씨는 박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당장 돌아오라”는 위협적인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또 김씨의 부모는 박씨에게 “남편과 시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지속적인 언어 폭력,남편의 허위 학력으로 인한 신뢰 상실,시부모에 대한 섭섭함이 겹친 박씨는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
마지막 사단은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벌어졌다. 입학식이 끝나고 김씨 어머니와 누나들이 찾아와 아들을 강제로 자신들의 차에 태우려고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를 제지하던 박씨와 박씨 어머니가 부상을 입었고 박씨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김씨 가족으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었다. 박씨는 2006년 3월 이혼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는 박씨가 남편 김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에서 이혼 판결을 내렸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김씨는 박씨에게 소유 부동산의 절반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 주고 재산 7500만원 및 위자료 1000만원도 함께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아들에 대한 양육권도 박씨가 갖게 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들 부부의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른 책임은 친정집에 머물면서 혼인관계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원고에게도 있지만, 피고의 빚을 갚아주고 생활비를 버는 한편 가사ㆍ육아에 시부모까지 모셔야 했던 원고의 입장을 이해하고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6년 정도의 혼인기간 내내 원고의 개선요구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심한 욕설을 해 원고에게 지속적으로 인격적 모욕감을 느끼게 한 피고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반복되는 심한 욕설은 언어 폭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물리적 폭력에 못지않게 상대방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는 점에서 이혼 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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