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의 따뜻한 미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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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19면

4년 전 그날도 동대문운동장 역에서 내려 회사로 걸었다. 그런데 무언가 눈에 띄어 깜짝 놀랐다. 화가 나 눈에서 뜨거운 게 발사되는 것 같았다. ‘이젠 시간마저 돈으로 사려는 거냐?’ 나를 흥분시킨 건 한 사내의 청바지였다. 분명 새것인데 허벅지와 무릎 앞뒤쪽이 바래 있고 꼬깃꼬깃 주름이 잡혀 3년은 입은 것처럼 보였다. 막 유행하기 시작한 ‘빈티지 진’이었다. 바지 하나 때문에 흥분하다니. ‘오버’ 맞다. 하지만 근거가 없진 않다.

그때 나를 화나게 했던 건 빈티지 진 한 벌이 아니라 빈티지를 영악하게 써먹는 상술과 그것이 유행하는 시류였다. 용돈이 모자랐던 대학생 때 본의 아니게 청바지 하나를 1년 넘게 거의 매일 입었다. 청바지는 자연스럽게 색이 바래면서 아랫단이 뜯어지더니 결국 사타구니에 구멍이 뚫렸다.

‘내추럴 빈티지’가 된 거다. 친구의 애인이 그 바지를 달라고 얼마나 떼를 쓰던지. 기분은 좋았다. ‘시간의 훈장’을 받은 기분이랄까. 그에 비하면 낡아 보이는 새 청바지는 ‘언내추럴 빈티지’다. 그래서 흥분한 거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그걸 인공적으로 꾸미다니. 그건 ‘뻥’ 아닌가.

빈티지를 연기하는 건 싫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것도 두 손 들어 반기고 싶다. 청담동을 보자. 새롭고 화려하고 비싸다. 몇 달 전에 뻑적지근하게 개장한 레스토랑은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처럼 ‘뿅’ 하고 새로운 카페로 변신한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어 더욱 비감하다고? 무슨 소리. 여긴 변하지 않으면 죽는 동네다.

이래서 청담동 사람들도 청담동을 별로 안 좋아한다. 화려하지만 ‘재미’가 없으니까. 요즘 그들이 자주 가는 곳은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그 길에 흐르는 최신 트렌드는 ‘빈티지’다. 가로수길에서 가장 ‘핫한’ 곳은 어김없이 빈티지풍으로 꾸며져 있다. 가로수길 사람들 얼굴은 청담동 사람들보다 밝다. 확실히 빈티지는 ‘번쩍거리는 새것’이 지배하는 시대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미덕을 가졌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빈티지’라도 환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빈티지에도 격이 있다. 내 친구의 집은 지어진 지 20년 넘은 34평형 아파트다. 그 집에는 그 아파트보다 오래된 전기밥통과 커피포트와 선풍기가 놓여 있다. 무슨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았으니 쓰는 것뿐이다. 그런데 거기 울림이 있다. 21세기의 민예품이랄까.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 백자에서 ‘부러 꾸미지 않은 적요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처럼 난 국화가 그려진 낡은 전기밥통에서 ‘소비사회에서 한발 물러난 고졸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새것으로 구입해 쓰다 보니 어느새 낡아진 것,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자연스럽고 따뜻한 미감. 이것이 빈티지의 최고, 최선의 경지이자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앞으로의 빈티지는 이랬으면 좋겠다.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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