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화합정치의 외양과 내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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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광복 50돌을 기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제창하고 있는 「화합정치」에 대한 기대감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金대통령은 대대적인 사면.복권을 단행한데 이어 불편한 관계였던 재계(財界)인사들과도 만나 화해했고,23일에는 김대중(金大中 )씨를 포함한 정계인사들및 前3부요인들과도 오찬을 함께 하며 또한번 화합을 강조했다.
우리는 며칠후면 집권후반기를 시작하는 金대통령이 이처럼 화합을 강조하는 것이 국정에서 어떤 변화로 나타날지 주목하면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권력자인 대통령이 솔선해 화해에 나서고,과거 원한이나 감정의 앙금을 푸는 것은 누 가 봐도 바람직한 일이며,야당대표를 포함한 각계원로들과 대화를 갖는 것도유익하고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다만 우리는 이런 모임이 수인사(修人事)차원의 대화나 덕담(德談)교환으로 끝나기 보다는 가급적 충실한 의견교환으로 국정에유익한 힌트나 충고가 나오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룹별로 오찬을 하고 형식적 대화를 나눴다고 화합이 되지는 않는다.따라서 대통령은 이런 모임을 좀더 자주 갖고 단순한 「행사」가 아닌 의견교환이 되는 자리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김대중씨와의 이날 대면이 3년만의 일이라 하여 매스컴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 우리 지도자간의 인간관계가 메마른데 새삼 개탄하게 된다.대통령은 정치인.원로뿐 아니라 서민들과도 만나 그들의 얘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말 국민적 화합을 이루자면 화해와 대화의 모임도 필요하지만 실은 정부의 정책과 인사에서 화합의 기조와 정신이 구현돼야 한다.당장 대화채널조차 없어진 여야관계를 정상화하는 일,6.27선거후 더욱 심각해진 지역의식을 완화하는 일 등에서 화합정치가 발휘돼야 할 것이다.
화합을 위해 또 한가지 필요한 일은 인기와 업적.공로등을 나눠갖는다는 자세다.여당이 공(功)을 야당에 돌리면 야당과의 관계가 좋아지고,아랫사람 또는 윗사람에게 서로 공을 돌릴 때 그조직은 화합할 수 있다.지금껏 우리 정치에는 독 식(獨食)주의나 냉혹한 흥정이 판쳤을 뿐 나눠갖는다는 화합의 기풍은 없었다. 우리는 집권후반기를 앞둔 金대통령의 화합제창이 곧 정책과 인사,정치풍토 등에서 구체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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