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12.12책임 못 물으면 반민특위 좌절의 再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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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9년 12.12군사반란 당시 육군수뇌부의 긴박한 통화내용이담긴 감청테이프가 돌연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이 테이프는 반란군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적이었으며,반면 이에 맞서는 진압세력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또한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적 사건」이라는 대통령의 규정과 반란죄 혐의라는 검찰의 수사발표에도 불구하고 반란책임자를 불기소처분한 사법적 판단과 그 이면의 정치적 판단에 대한 씁쓸함을 남긴다.
광복50주년인 지금의 논란은 해방직후 반민특위의 성립과 좌절을 떠올리게 한다.
친일파 척결을 위해 구성된 반민특위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몇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다.그 이유는 자신의 권력기반 안정화에만 몰두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간섭과 파괴행위에 의한 것이었다.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역사적청산이라는 국민적 대의는 정치논리에 의해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12.12반란사건을 둘러싼 공방도그와 같지 않을까?당장의 정치적 논리가 역사적 논리를 압도하는불행한 상황이 다시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구시대의 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앞에 지극한 사명감을 느 꼈을 「문민정부」가 자신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반란책임자에게 역사적 면죄부를부여한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문민정부와 우리국민은 지난해 4월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한 판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베르사유 중죄재판소는 전쟁중 나치로 활약한 79살의 한 전범에게 프랑스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언도했다.50년전의 일로,그것도 팔순의 노인에 대한 이런 단호한 사법처리를 프랑스인중 70%가 찬성했다.나치청산이란 역사적 과제는 어제의 일이 아니라오늘과 내일의 일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5.18 광주학살과 5,6共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현실을 배태한 12.12반란 사건에 대한 역사적 청산은 그 불행만큼이나 공소시효의 문제를 넘어서는 역사적 과제로서 의연히 남아있을 것이다.문민정부가 반민특위의 좌절의 책임자 와 동렬에 서서 역사적 평가를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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