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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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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스웨덴의 전설적인 4인조 팝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 가운데 ‘The Winner Takes It All’ 이란 노래가 있다. 승자독식(勝者獨食),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는 뜻이다. 노래에선 다른 여자에게 연인을 빼앗긴 비참한 심정을 승자독식의 게임에 빗댄다. 그게 경기의 규칙(the rule of the game)이라면 할 수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달랜다. 남녀 간의 관계에선 확실히 승자독식의 규칙이 적용된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다투거나,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다툴 경우 최종 결과는 한 사람이 상대를 독차지하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연인을 나눠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정치판은 대표적인 승자독식의 경기장이다. 선거에선 단 한 표의 차이로도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그야말로 박빙의 승리를 거뒀다. 승자인 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가 됐고, 패자인 박 의원은 후보가 못 됐다. 후보 자리를 나눠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대통령은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동영 후보도 얼마간의 표를 얻었지만 대통령 직은 득표 비율대로 나눠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승자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패자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게 게임의 규칙이다. 아무리 국정의 동반자니, 권력의 분점이니 얘기해도 대통령 직을 나눠 갖지 못하는 이상 대통령은 대통령인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역구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고, 그렇지 못한 후보는 그저 후보로 남을 뿐이다. 냉혹한 승자독식의 게임이다.

승자독식의 경기 규칙은 경쟁을 부추기는 데 효과적이다. 이 게임에선 승자의 몫이 워낙 크기 때문에 모두가 죽기살기로 달려든다.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처절한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그러나 한 사람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낳는 승자독식 게임은 공평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승자독식 게임에선 각자의 노력과 상관없이 극단적으로 편파적인 보상을 하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이로 떨어진 패자는 패배를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패배가 주는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좌절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선거에서 승자독식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는 정당별로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눠 갖는다. 비례대표제는 승자독식으로 당선된 지역구 의원들의 불균형한 정당별 분포를 보정(補正)해준다. 얻은 표에 비례해 의석을 챙길 수 있으니 억울할 일이 없다. 그러나 54석의 비례대표만으로는 승자독식 게임의 폐단을 바로잡기 어렵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권자들이 그 일을 해냈다. 개별 지역구에서는 처절한 승자독식 게임이 벌어졌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최종 의석 분포를 보면 전혀 승자독식이 아니었다. 유권자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전국적인 싹쓸이 대신 적절한 견제와 균형의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치권에선 “어떤 선거에서든 유권자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고 한다. 개별 유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서 한 표를 행사할 뿐이지만 그 집합으로서의 유권자들은 흡사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늘 가장 현명한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새 정부가 일할 수 있을 만큼의 여지는 주되 독식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승자독식의 규칙에 따라 뽑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독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총선이 끝나자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 사장과 정부 산하기관장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재신임 여부에 대한 하회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승자독식의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농부 작가 전우익 선생의 산문집 제목이 새삼 떠오른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