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說"만으로도 부끄러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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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동숭동 이화장(梨花莊)은 풍상속에서 나이를 먹고 있다.
방문객들은 참신한 경험을 갖게 된다.그것은 『우리의 늙은 대통령 부부가 이렇게 청렴하고 검소했던가』라는 놀라움이다.
삼베.무명으로 몇차례 기운 돗자리,꿰맨 흔적이 역력한 할아버지(李承晩대통령)의 중절모,낡고 기운 할머니(프란체스카여사)의속옷들,李대통령의 메모가 빽빽한 이면지,몽당연필,허드렛물을 아꼈던 빨랫대야 등등….
습관과 생활만이 아니었다.12년 집권의 권력자가 65년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날때 이승에 남긴 것이라고는 이화장 한채 뿐이었다.그 집도 자신이 만든 세속의 부(富)가 아니다.47년 그를 존경하는 유지 33명이 공동으로 구입해준 것이 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를 모셨던 이들은 검소함에 가슴이 찡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전속 이발사였던 박수웅(朴秀雄)씨는 이런 얘기를 할때면 목소리가 젖는다.
『대통령의 머리를 깎는데 러닝셔츠가 낡아 목부분이 해어지고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있더군요.허리띠는 얼마나 오래 맸는지 두겹가죽이 떨어져 따로 놀고….』 李.朴대통령은 독재자였다.어쨌거나 통치형태는 독재였다.그리고 말로(末路)도 망명과 피살이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마르코스.이멜다와는 달랐다.거액의 해외도피도,구두 3천켤레도 없었다.
광복.건국일인 8.15를 앞두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두 전직대통령의 4천억원 비자금설이 사회를 우울하고 화나게하고 있다.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그 의심은 수년동안 그들 곁을떠난 적이 없다.
이러한 안개를 걷어내는 일은 사법당국과 역사의 몫이다.
그러나 실체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사회의 부끄러움은 이미 시작됐다.존경받아야할 전직 대통령들이 구설수의 도마위에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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