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울리는"사랑의 미로"-黨간부들에 한국가요테이프불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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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북한 노동당 간부가 평양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제일 먼저 할 일이 하나 있다.차안의 카세트 테이프를 재빨리 뽑는 것이다.그 테이프가 바로 최진희의『사랑의 미로』테이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2년11월 테이프와 관련된 자동차 사고가 발생했다.운전자는 고려상사(일명 919호실)지도원 양형철이었다.그는 당시 외화벌이를 위해 양강도로 지방출장을 나갔다.때마침눈이 잔뜩 왔다.아차 실수로 그의 자동차가 높은 벼 랑에서 굴렀고 양형철은 죽고 말았다.
자동차 사고가 나자 양강도 사회안전원(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운전자는 죽었는데 박살난 그의 자동차에서 생전 듣지못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충직한 그안전원은 테이프를 수거,상부에 보고했다.테이프를 들어본 중앙당은 발칵 뒤집혔다.문제의 테이프가 최진희의『사랑의 미로』였기 때문이다.
이 건은 그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어차피 죽은 사람을 굳이처벌할 필요가 있느냐』는 동정론이 우세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유야무야된 진짜 이유는 당 간부치고 차안에서 남조선 노래를 안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자신들도 뒤가 켕 겼던 것이라는게 북한 강성산(姜成山)총리 사위로 귀순한 강명도(康明道.37)씨의 증언이다.
이 사건 이후 북한 당간부들 사이에서는 『차사고가 나서 죽어도 남조선테이프는 감추고 죽어라』는 말이 농반 진반의 유행어가되었다고 한다.
康씨는 북한에 남한 가요 테이프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80년대 중반부터라고 전한다.『사랑의 미로』외에도 조용필의『허공』,김세레나의『갑돌이와 갑순이』『가요 반세기』등이 담긴 테이프가 돌아다닌다고 한다.
당간부들이 노래 테이프를 즐겨 듣는 이유는 1주일에 한두차례있는 지방출장때 장거리운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남한 가요가 담긴 테이프 이외에도 북한의 최고 인기악단인 보천보전자악단의 연주곡,칠보산전자악단이 연주하고 노래한 남한가요 개사곡(改辭曲)테이프도 듣는다.
〈崔源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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