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언 브리튼 EU통상담당 집행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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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번 세계무역기구(WTO) 금융서비스협정은 전적으로 리언 브리튼 유럽연합(EU)통상담당 집행위원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미국의 협상탈퇴로 자칫 무산될뻔한 금융협상이 파국의 위기에서 되살아난 것은 그의 기민한 판단력과 끈질긴 설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브리튼 집행위원은 미국을 제쳐놓고도 협상을 성사시켰다는 점을드러내놓고 강조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바로 다자간협상에서 미국의 공백을 EU가 충분히 메웠다는 자신감이다.
지난달 29일 협상마감시한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미국이 갑작스럽게 협상탈퇴를 선언한 직후 브리튼 위원은 마리오 몬티 국내경제담당집행위원을 만났다.
이들은 어떻게하든 금융협상을 살려내기로 합의하고 우선 유럽국가들만이라도 한 목소리를 내도록 집행위를 설득하기로 했다.
어떤 형태로든 다자간협정을 성사시키는 것이 유럽에는 이익이라는게 브리튼위원의 주장이다.
그러나 EU집행위는 미국이 없는 다자간협상의 성공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여기서 브리튼은 그의 생애최대도박을 감행한다.미국을 배제하더라도 협상은 성공할 수 있다고 유럽 각국 외무장관들에게 장담한것이다.그 이면에는 오히려 미국이 탈퇴한게 잘됐을지 모른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는 일단 협상마감시한을 한달 연장하고 협정유효기간을 2년반으로 잡은 잠정협정안을 제안해 회원국들의 동의를 끌어냈다.
다음은 금융개방에 소극적인 아시아국가를 설득하는 일이었다.여기서도 그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한국.일본등 아시아의 핵심적 국가들이 EU와 다자간협정을 맺을 경우 미국의 쌍무적인 압력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분쟁에서 보듯 미국이 공세적인 전략으로 나올때 다자간협정이라는 울타리속에 있는게 더 안전하다는 논리로 이들을 설득해 나갔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고바야시 도모히코 EU주재일본대사다.
그는 이참에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데 브리튼과 의견을 같이했고,국내적으로는 보수적인 대장성(大藏省)에 자극을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고바야시대사는 대장성의 미온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연일 본국정부에 다자간협상 참여의 당위성을 역설해 결국 일본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이를 계기로 한국의 동의도 받아낼 수 있었다.
리언 브리튼집행위원은 이번 WTO금융협상에 건 도박이 성공을거둠으로써 세계통상외교 무대에서 미국의 독주를 물리친 스타로 부상했다.
그가 앞으로 남은 WTO서비스협상에서 어떤 역량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金鍾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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