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정부혁신관’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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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8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본관 1층 로비. 정부의 청사 로비 개방 첫날을 맞아 로비에 있는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친 인근 주민 김미화(45·주부)씨는 청사를 나오려다 발길을 멈췄다. 로비 한쪽에 있는 안내데스크에 도우미도 없고, 큰 문은 굳게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여기는 무슨 공간이냐”며 경비원에게 물었다. 경비원은 “정부혁신관(이노비전·INNOVISION)인데 간판을 떼고 리모델링 중”이라고 설명했다. 입구 한가운데는 ‘내부 콘텐트 변경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이른 시일 내에 재개관하겠습니다’라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김씨는 “얼마 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벌써 폐관하느냐”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 만든 정부혁신관이 개관 1년7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정부혁신관은 2006년 9월 17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정부는 리모델링 작업 중이라고 설명한다. 정하경 행정안전부 혁신조직실장은 8일 “전시물의 80%를 차지하는 전자정부 관련 전시물은 그대로 두고 이전 정부의 ‘혁신’ 홍보물인 나머지 20%만 바꿔 6월 중 재개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전시관 이름에서 ‘혁신’자도 뺄 계획”이라며 “전시물 교체 작업에 2억~3억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가 실용·창의로 바뀐 만큼 새로운 콘텐트를 담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그러나 “다음 정부가 들어서는 5년 뒤에는 또다시 폐관하고 내용물을 바꾸겠다는 것”이냐며 “정부혁신관이 ‘정부 홍보’보다 ‘정권 홍보’에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 단추 잘못 끼운 혁신관=노무현 정부는 “정부 혁신 성과를 한눈에 보여주고 공무원 사회의 혁신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며 혁신관을 만들었다. 140평 규모에 ^혁신사랑방^혁신과의 만남^혁신마루^전자정부 뜨락^이노비전 테라스 등 9개 공간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혁신관은 문을 열 때부터 “정권 홍보용 시설에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일부 코너에는 혁신 관련 정부 행사 홍보물을 전시해 놓아 관람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교사·학생 등을 불러 단체 관람까지 하게 했다. 19개월간 2만4000여 명이 방문했다.

◇애물단지 혁신관=행정안전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혁신관을 계속 개방했다. 그러나 이전 정부의 홍보물이 많은데 그대로 두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혁신관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로비도 개방하는 마당에 혁신관 자리에 놀이방이나 커피 전문점 등 일반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예산을 들여 세운 시설을 철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새 정부 입장에서 버리기도, 두기도 아까운 ‘계륵’ 같은 존재가 혁신관”이라며 곤혹스러워했다.

행안부는 시설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예전 정부 관련 자료를 모두 폐기하는 대신 ‘실용과 창의’ ‘섬기는 정부’ 등 새 정부의 정책 홍보물을 새롭게 들여놓을 계획이다. 내용을 이명박 정부의 정책 홍보물로 채우면 정권이 바뀔 때 또다시 공사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이날 청사 로비 서점에 들른 박정철(35·회사원)씨는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영속할 수 있는 내용을 전시해야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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