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영특하기도 해라,한자를 다 알고….』 아리영이 마당으로 내려가 소년의 손을 잡았다.
『몇 살이지?』 『아홉살.』 『아홉살입니다…라 해야지.』 옆에서 아버지가 바로잡는다.
『아홉살입니다!』 큰 소리로 되외는 순순한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귀엽네요.』 소년의 아버지를 향하여 손을 내밀었다.
『김 아리영입니다.폐 끼치겠습니다.』 『별 말씀을….』 나선생은 그의 아들처럼 얼굴을 붉히며 아리영과 악수했다.크고 검은손아귀에 작고 흰 아리영의 손이 파묻혔다.
『그럼 저희는 생선을 장만해야겠습니다.』 어롱을 들고 그는 황황히 뒤꼍을 향했다.아들이 따라간다.
『방으로 모시겠습니다.저녁상 볼 동안 좀 쉬십시오.』 서귀포댁이 아리영의 가방을 들고 별채로 앞장섰다.
안채 바로 옆의 별채 객실은 작지만 정갈했다.좁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온돌방 둘이 마주하고 있다.장판도 콩빛으로 반들반들했고 하얀 한지(韓紙)벽이 깨끗했다.구름 무늬 섬유가 듬성듬성박힌 운영지(雲影紙)였다.서귀포댁의 깔끔한 살림 솜씨가 엿보였다. 『며느님께도 인사드려야지요.』 아리영은 안채 마루 옆의 부엌에서 서성거리는 여인을 건너다 보며 말했다.
『없습니다.』 서귀포댁이 담담히 한마디만 했다.
『네?』 아리영은 무슨 뜻인지 얼른 파악할 수 없어 되물었다. 『나갔습니다.지아비가 못나 그랬지요.노상 무당만 쫓아다녔으니 며늘아이 나무랄 것도 없어요.재혼해서 잘 산답니다.』 숨이막혔다.못할 말을 시킨 것같아 새삼 서귀포댁 얼굴을 지켜봤다.
일흔을 헤아리는 나이지만 곱고 정정한 것은 심성이 착하고 긍정적인 까닭일 것이다.
『아드님께서 손수 생선 장만하시나보죠? 가서 구경해도 될까요?』 아리영은 집안을 돌아보며 부엌 뒤 수돗가로 갔다.
어롱에서 꺼낸 물고기를 나선생이 장만하고 있었다.배를 쪼개 발리는 칼놀림이 능하다.소년이 그 생선 토막을 받아 물에 헹군다.부자간의 호흡이 척척 잘 맞았다.
『아,형!』 생선 토막을 소쿠리에 담으며 계원이 아리영 뒤쪽을 향해 불렀다.
덩달아 뒤돌아보니 거기에 또 하나의 계원이 서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아리영은 계원을 보고 다시 뒤돌아서서 또 하나의 계원을 쳐다봤다.똑같다.어찌된 영문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