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통상정책의현장>中.政治쇼에 좌우되는 경제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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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미국 통상정책의 문제는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의 싸움에서 이기는 쪽이 언제나 정치논리라는데 있지요.』미국의회 입법조사국의 경제조사관 제임스 잭슨은 통상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쓸 때마다 자신이 경제학자라는데 일말의 비애를 느낀다고 털어놓는 다.
기껏 자유무역론을 펼쳐 봐야 최종결론은 항상 표를 의식한 정치가들의 보호주의적 주장에 밀려 빛이 바래기 일쑤라는 얘기다.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분쟁은 그 대표적인 예다.경제논리로만 보면 미국제부품 구매를 강요하는 미국의 주장은 그야말로 억지다.
이런 통상전략이 채택된 이유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미국자동차산업의 아성인 디트로이트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샘 더나우 회장은 한마디로 「정치적 쇼」라고 말한다.그는 일본이 자율구매를 확대한다는 어정쩡한 합의로는 디트로이트 자동차산업에 별다른 이익을 주지 못 할 것이라고지적했다.
「국제무역에 대한 소비자협회」의 도린 브라운 회장은 더욱 분명한 입장이다.그는 『대일(對日)제재는 미국소비자의 이익을 무시한 처사』라며 『일방적 제재위협 대신 세계무역기구(WTO)에제소하는게 옳은 순서』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불합리한 정책이 나올 수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통상정책의 입안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상문제의 대부분은 해당업계의 불만에서부터 비롯된다.행정부에전달된 업계의 요구는 일단 관계부처의 실무자급에서 처리방안이 논의된다.
이 협의에는 국무부를 비롯해 무역대표부(USTR).상무부.농무부.재무부가 대체로 고정멤버로 참석하고 법무부가 간혹 포함되기도 한다.농무부 대외농업처(FAS)의 앨런 험필은 『통상문제의 95%가 여기서 합의에 이른다』고 말한다.한국 관련 담당자들도 수시로 이같은 모임에서 얼굴을 맞대다 보니 한국의 통상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맞춘듯이 똑같은 목소리다.
무역제재와 같은 중대사안의 경우는 장관급까지 3단계 상위협의를 거치는데 여기서부터는 정치적인 고려가 가미된다.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고 의회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통상문제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의회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다는게 입법조사국의 분석관 웨인 모리슨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정치적 입김이 늘 보호주의로 흐른다는게 문제다.
텍사스大의 대릴 영 교수(경제학)는 이에 대해 『미국은 자급자족적.내부지향적인 경제체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대외경쟁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전제하고 『미국이 주장하는 자유무역의 구호 뒤에는 보호주의적 성향이 감춰 져 있다』고설명한다.
조지타운大 수전 라건 교수(미국정치) 역시 『보호주의적인 미국의 정치문화가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을 내세우면서도 대내적으로는 보호주의로 기우는 2중의 잣대를 갖게 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이런 정책결정 구조에서는 보호주의적인 정치논리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WTO체제를 받아들이면서도 통상법 301조라는 무기를 놓지 않는 미국 통상정책의 양면성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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