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원서 ‘조무사 이수증’ 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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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린이집 원장인 오모(42·여)씨는 2005년 3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속성으로 따게 해 주겠다’는 광고 전단을 받았다.

영등포 H간호학원 명의로 된 광고였다. 오씨는 마침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그해 12월 시행되는 ‘영·유아 보육 시행규칙’에 따라 영·유아를 100명 이상 보육하는 어린이집은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한 명을 둬야 했기 때문이다.

간호조무사가 되려면 필기시험을 통과한 뒤 학과교육 740시간, 실습교육 780시간(대학병원 또는 병원에서 400시간)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 학원 원장 엄모(49·여)씨는 학과교육이나 실습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거나 일부만 수료케 했다. 엄씨는 학원을 찾은 이들로부터 1인당 200만~220만원을 받고 교육이수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해 줬다.

서울경찰청은 7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간호학원 원장 이모(53·여)씨 등 37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이들로부터 허위 교육이수증명서를 발급받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딴 오씨 등 어린이집 원장 68명과 산후조리원장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간호학원 원장은 2005년 3월에서 2007년까지 수강생 9190명에게서 145억여원을 받고 허위 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적발된 어린이집 원장들은 간호조무사 고용에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허위 자격증을 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1년 이상 걸리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제대로 된 교육 없이 2~6개월 만에 땄다. 경찰 관계자는 “적발된 원장 중에는 기출문제로 필기만 합격한 뒤 최소한의 기술교육도 받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보육원생의 응급조치를 목적으로 어린이집에 간호조무사를 두게 한 입법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자격증 부실 관리 심각=현재 간호조무사 자격시험과 자격증 발급 업무는 지자체가, 간호학원에 대한 지도·감독 업무는 시·도 교육청이 맡고 있다. 감독 체계가 둘로 나뉘어져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에 적발된 수강생 중에는 불법 자격증으로 대학 간호학과에 특례 입학하거나 군에 위생병으로 입대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 병원 실습을 나가는 수강생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70만~8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주로 청소 등 잔심부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병원과 간호학원이 유착해 수강생에게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첩보가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주영 기자

◇간호조무사=간호 및 진료 업무를 보조하는 사람.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와 구분된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간호보조원으로 불렀다. 의료법을 개정하면서 88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서는 각 시·도청에서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학과교육과 실습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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