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사고예방 묘책은 정책實名制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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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이후 경제부처 일부 실무진을 중심으로 『정책 실명제(實名制)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크고 작은 정책들이 어느 대통령 무슨 장관 때,어떤 실무자의손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이에 대해 정치권은 어떤 입장이었는지 등을 속속들이 기록에 남겨 나중에라도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면 평가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美國)등 선진국에서는 퇴임한 지 한참이 지난 행정부 관계자나 정치인들이 재직 당시의 「정책」때문에 의회에 불려 나와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수뢰.횡령등 형사 사건에 연루된 경우를제외하고는 전직 관료나 정치인이 정책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평가를 받는 일은 없다.문제가 생겨도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일이라고 딱잡아 떼기 일쑤다.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에는 대형 사고나 사건이 터지면 으레 도식(圖式)적인 통과의례 절차가 되풀이돼 왔다.
대통령은 「철저한 대책」을 지시하고,총리는 「對국민 사과문」발표에 이어 긴급 회의를 주재,수습책을 독려한다.관계 장관및 부처들은 뒤질세라 온갖 좋다는 대책은 모두 내놓는다.국회의원들은 국회를 소집,「관계자 문책」과 「내각 사퇴」를 들고 나오고업계는 「자율 결의」대회를 갖는다.그리고는 「끝」이다.삼풍백화점 사고가 터진지 3주일여 지난 이번에도,지금까지는 이 수순(手順)이 예외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물론 이런 결과가 정부나 정치권만의 책임은 아니다.일시적이고성급한 관심만 보이다간 금방 잊어버리는 국민 모두가 함께 책임을 느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80년대 초,한 미국 장성(將星)이 우리 국민을 「레밍」(떼지어 다니는 들쥐의 한 종류)에 비유,물의를 일으킨 적이있었다.무슨 일이 터지면 『우』하고 한바탕 난리를 치다가는 금세 흐지부지 되는 속성을 꼬집은 것이었다.
정책 실명제 도입 주장이 한결 설득력을 갖는 것은,이런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도 마련돼야 한바탕 떠들고는 『나 몰라라』하는 악순환(惡循環)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뒤처리를 보고 우리를 또 다시 「레밍」이라고 비아냥대는 지한(知韓)인사들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金 王 基〈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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