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됐다" vs "정상이다"…중국 경제진단 제각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중국 전국정치협상회의(政協) 개막 이틀째이던 지난 4일. 원자바오(溫家寶)총리는 유명 경제학자들이 운집한 정협의 경제 분과 위원회를 찾았다. 먼저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우징롄(吳敬璉)이 발언에 나섰다. 74세의 吳는 중국 경제학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현재 중국 경제는 과열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자 둘째로 일어선 베이징(北京)대학의 샤오줘지(蕭灼基)교수가 "중국 경제는 정상 운행 중이다. 경솔하게 과열 운운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71세의 蕭 또한 중국 4대 경제학자 중 하나로 통하는 거물이다.

성장 문제에서도 두 대가는 또다시 충돌했다. 吳가 "GDP 숭배가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하자 蕭는 "현재 GDP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비꼬았다. 溫총리 앞에서 두 경제 원로가 펼치는 설전으로 장내는 숨막힐 듯했다. 과거 정부의 입장에 맞춰 한목소리 내기에 익숙해 있던 풍토와는 전혀 딴판이다. 이젠 중국 경제학자들이 총리 눈치 볼 것 없이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중국 학자들의 서로 다른 주장이 기업 등 특정 이익 집단의 이해 대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 때문이다. 2001년 吳와 蕭가 벌였던 주가 논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吳는 주가 변동엔 흑막이 도사려 있으며 중국 증시는 도박장 같다고 혹평했다. 그러자 蕭는 "吳의 주장이 득세하면 중국 자본 시장이 재앙을 맞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에 대한 중국 정법대학 양판(楊帆)교수는 두 교수의 그 같은 대립을 이렇게 설명했다. 吳는 당시 모건 스탠리를 배경으로 하는 회사인 중진(中金)의 수석 경제학자로 증시를 침체시키는 발언을 잇따라 했다. 결국 외국 자본이 싸게 중국 증시를 잠식하도록 도운 게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蕭의 경우엔 그 가족들이 주식 투자에 열중이던 시점으로 증시 부양 견해를 펼쳤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중국 경제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들의 관점이 이처럼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면 걱정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경제학자들이 기업들의 사외 이사를 겸직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그 같은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吳는 중국연통 등 4개 기업의, 蕭는 다탕(大唐) 등 5개 기업의 사외 이사다. 현재 명성 있는 중국의 경제학자 중 상당수가 기업의 사외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