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관 주도 ‘메가뱅크 구상’은 억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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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소유한 산업은행·우리금융지주·기업은행을 하나로 묶자는 이른바 ‘메가뱅크 구상’이 나왔다. 겉으론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돼 있다. 금융회사 대형화라는 세계적 흐름과 맞는 것 같고, 묶어서 팔면 더 비싸게 받는다는 대목에도 마음이 동한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대형 토종은행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속내가 의심스럽고 앞뒤 순서도 뒤바뀌었다.

이들 국책은행 3개를 합치면 자산이 500조원을 넘는다. 자산 200조원대인 국민·신한·하나은행 등 빅3보다 두 배 이상 덩치가 크다. 통합 후 매각 전까지는 사실상 정부가 금융시장을 주무르게 되는 셈이다. 나중에 메가뱅크를 비싸게 팔겠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법으로 매각시한을 못박은 우리금융지주의 매각조차 지지부진한 게 현실이다.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의 테마섹 모델까지 끌어들여 민영화 작업을 늦추려는 갖가지 시도가 난무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관료들이 왜 이런 작업을 주무르는가. 지금까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정부 주도로 은행 대형화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이들 은행의 수장은 공교롭게도 한결같이 모피아(옛 재정경제부) 출신이다. 관료발(發) 메가뱅크 구상이 민영화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오해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책은행 민영화는 이미 정해진 계획대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격기준은 어떻게 할 건지, 국내외 차별소지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누차 지적해 왔듯 민영화는 민간에 소유와 경영 모두를 넘기는 것이다. 그 후 서로 합치거나 덩치를 키우는 것은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이다. 관료들의 입에서 이런저런 시나리오가 난무하는 것은 일만 꼬이게 하고, 자칫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들릴 우려마저 있다. 메가뱅크 혼선을 지켜보면서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에 대한 추억부터 뿌리뽑는 게 금융선진화의 첫걸음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메가뱅크 구상은 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