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새商標 강요하는 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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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여름에 일어난 유형.무형의 참사(慘事)는 온국민을 불안하게만들고 졸지에 국민의 기대감을 앗아간 것같다.
국민의 정서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나 정당이 주는 안정감과 개인생활의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다.
정치활동의 내용은 언제나 한 나라의 정치체계(정치제도.운영및구성원 전부를 말함)가 튼튼하게 되고,국민과의 강한 정열과 유대감속에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국민의 안정감과 기대감은 그나라의 정치체계를 떠받치는 지지기반이 되는 것 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당을 가리켜「포괄적 정당」이라고 하며 흔히 정당을 백화점에 비유한다.이것이 바로「캐치 올 정당(catch-allparty)」이라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요즘 백화점이 생산자보다 소비자를 의식하듯 오늘날의 정당은 정치권력의 소비자인 유권자를 더 의식하는 것이다.
백화점이 좋은 상품을 공급해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듯 정당 역시 좋은 정치를 해 유권자에게 안정감과 기대감을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는 처절한 경험을 갖게 했다.그런데 왜 오늘의 정당은 그들마저 또다시 붕괴하려고하는 것일까.
막 선거가 끝났고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켰던 그 정당이 우리에게 무형의 참혹한 현실을 안겨주려는 것일까.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붕괴하더니 선거가 끝난뒤 또 다시 야당이 붕괴한다는말은 무엇을 우리에게 들려 주려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어떤 백화점이나 고층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섬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이제 새로 짓는 정당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것일까.기대감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기가 좋아하고 자주 가던 곳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처럼 유권자들은 그렇게 후보자를 찍어주는 것이다.
물건을 팔고난 뒤에 그 백화점이 없어지면 서운하듯 지지하던 정당이 붕괴하면 그만큼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을까. 지난번 6.27 4대 지자체 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의원선거를뺀 3대선거는 정당공천에 따라 정당과 후보를 보고 주민들은 표를 찍었다.그런데 그중 한 정당이 선거가 끝나자 마자 주력이 떨어져나가 다른 간판을 달려 하고 있다.
이는 일방적으로 상품을 공급하는 고급백화점같이 정당이 일방적으로 유권자에게 새로운 상표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새로운 정당을 만들려는 정치인들은 기성 정당의 갑작스런 붕괴로 좌절하고고통받아야 하는 그 유권자를 생각해 본 일이 있 는가.
선량(選良)들의 상표가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당선된 선량은 분명히 정치적 상품이고 우리는 그들의 상표를 보고 표와 바꾸어선택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치를 일방적인 가치의 공급으로만 보는 것은고객을 무시하는 백화점주인의 행태와 같다.
손님을 생각지 않고 삼풍백화점에서 피신한 간부에 대한 도덕적.인간적 비난의 소리가 있다는 것을 정당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그런 간부가 또 백화점을 경영한다고 할 때 손님이 모일까.
모인다 해도 그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국민의 지지를 얻기에는 너무 시간이 모자라리라고 본다.
정치적 소비자가 정치백화점을 걱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정치」는 그 국가 구성원의 것이기 때문에 한마디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중앙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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