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 "대통령님, 문제가 심각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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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논리 설파로 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방과)가 한 일간지에 연재해오던 칼럼을 중단하며 노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던졌다.

강 교수는 한국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에 실린 '강준만의 쓴소리: 노무현 대통령님께'에서 "저는 탄핵안 가결에 대해 누구 못지 않게 분노하고 개탄하는 사람입니다만, 열린우리당의 비판 내용엔 동의하지 않습니다"라면서 "증오와 원한을 만들지 마십시오. 더디 가더라도 화해와 타협을 해가면서 우리는 옳은 길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언했다.

강 교수는 이 글에서 "대통령님. 지금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도무지 저 같은 중간파가 설 땅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님을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양극으로 갈려 이 모양인데 대통령님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떠할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면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취한 '방법론'에 대해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저주를 이용해 과거의 민주화 동지들에 대한 사실상의 '인격살인'을 저질렀고 ▶지난 수십년간 저질러진 '호남 소외'를 누구보다 잘 아는 노 대통령이 영호남 지역주의를 양비론으로 대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님께선 그런 것들은 개혁과 미래를 위해선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저는 바로 그런 생각을 재고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라면서 "대통령님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도 사랑과 관용을 호소해 주십시오. 대통령님이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될 자질과 역량이 충분한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호소했다.

한국일보측은 이 칼럼의 중단과 관련, 칼럼 말미에 "강 교수는 '(과거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책들을 썼던 사람으로서 져야 할) 책임을 자성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당분간 쉬고자 하며 성원을 보내 주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해 왔습니다"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2002년 3월부터 이 칼럼을 연재해왔다.

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진 강 교수는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하자 '우리당이 실패할 10가지 이유'를 출간하는 등 이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디지털 뉴스센터]

['노무현 대통령님께' 전문]

노무현 대통령님.

외람됩니다만 저는 몇 개월 후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모든 일이 대통령님께서 원하고 기대하시는 대로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님께 위로보다는 고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분간 한가한 시간을 '학습'과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시면서 제 고언을 음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3, 4개월 전 민주당 분당과 관련하여 열린우리당을 강하게 비판했었습니다. 대통령님도 비판했지요. 그 후 저는 정치에 관한 글쓰기를 중단했습니다. 여기 한국일보 지면에도 '쓴소리'는 해야겠는데 정치를 피해가느라 소재 고갈로 아주 혼이 났습니다.

제가 왜 정치에 대해 침묵한지 아십니까? 바로 엊그제까지도 저를 존경한다던 분들이 제가 열린우리당을 비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게 돌을 던지는데 그들과 싸우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제가 대통령님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를 호되게 비난하더군요. 두 손 들었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대화 불능의 상태입니다. 도무지 저 같은 중간파가 설 땅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님을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양극으로 갈려 이 모양인데 대통령님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떠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런 극단적 분열주의에 대해 과거 대통령님을 열렬히 지지하는 책들을 썼던 사람으로서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도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탄핵안 가결에 대해 누구 못지 않게 분노하고 개탄하는 사람입니다만, 열린우리당의 비판 내용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과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숭고한 목적을 모르지 않습니다. 제가 동의할 수 없었던 건 그 방법론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저주를 이용해 과거의 민주화 동지들에 대한 사실상의 '인격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신당 창당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한다고 해서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만 어떻게 하루 아침에 '반(反) 개혁, 친(親) 부패, 지역주의 기생세력'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느꼈을 인간적 배신감과 모멸감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감옥 가서 고생하는 건 나중에 명예나 되지요. 그런 식으로 모멸을 당하는 건 감옥에 몇 년간 처박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일 겁니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국민적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들도 자식들에게 지키고 싶은 명예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저질러진 '호남 소외'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실 대통령님께서 영호남 지역주의를 양비론으로 대하는 것도 전혀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선 그런 것들은 개혁과 미래를 위해선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저는 바로 그런 생각을 재고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증오와 원한을 만들지 마십시오. 더디 가더라도 화해와 타협을 해가면서 우리는 옳은 길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도 사랑과 관용을 호소해 주십시오. 대통령님이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될 자질과 역량이 충분한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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