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85시간만에 不實뚫고나온 인간승리-생환 柳智丸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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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 하느님,나온다 나와!』 11일 오후3시30분쯤 사고발생2백85시간30여분만에 삼풍백화점 북관(A동)붕괴현장 정중앙 콘크리트 잔해속 한사람이 겨우 운신할 수 있는 공간에 갇혀있던유지환(柳智丸.18)양이 극적으로 지상으로 구출되는 순간.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柳양의 왼쪽 발톱은 13일동안이나 생지옥에 있었던 것과 달리 유난히 빛났다.
붕괴현장 주변의 구조반원.실종자가족들,그리고 온국민은 최명석(崔明錫.20)군 생환에 이은 「인간승리 드라마」에 환호했다.
柳양의 생존이 확인된 것은 이날 오후1시30분.
성도건설 소속 포클레인 기사 박영배(朴英培.39)씨는 이틀전崔군이 발견된 A동 중앙에서 남쪽으로 약3m쯤 떨어진 지하1층에스컬레이터 옆 부분에서 지하1층 상판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 있었다. 朴씨는『상판이 기울어져 있어 빈공간에 생존자가 있을지모르니 파보자』는 작업반장의 지시에 따라 신중하게 포클레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쿵쿵쿵….』 지하에서 희미한 소리가 울려왔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영등포소방서 구조대원 정상원(鄭相原.30)소방사가 주먹 하나만한 조그마한 구멍을 발견하고 머리를 기울였다. 그는 귀를 의심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가느다랗기는 했지만 분명 사람의 목소리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오후1시50분 최명석군에 이어생존자가 있음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 안에서 희뿌연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오른쪽 발이었다.
『살아있으면 발을 움직여봐요.』 높이 30㎝,한사람이 누우면꽉찰 공간에 몸이 엎드려져 있는 상태에서 요동치듯 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름은.』 『유지환.』 『유지선이라고요?』 『왜 이름을 바꿔요.유지환이라니까요.』 누군가 자신을 구조하고 있다고 확인했기 때문일까.柳양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평정심을 유지한채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또렷또렷 묻는 말에 웃음섞인 대답을 해왔다.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은 영등포소방서 천석기(千錫基.38)구조대장에게 전달됐고 오후2시쯤 지휘본부에도 알려졌다.
『생존자가 또 나왔다.』신바람이 난 구조대원들이 산소용접기.
핸드드릴등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현장에 있던 영등포소방서 구조대원 6명은 제일 먼저 겉면에 돌출된 철근을 용접기로 끊어냈다.오후1시55분쯤 柳양의 목을 축여줄 물이 건네졌다.이어 1백10여분동안 가슴졸이는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柳양의 몸과 상판 사이에 깔려있던 환기통 함석판이 절단됐다.
포클레인이 다시 가동돼 함석판을 끌어내기 시작했다.구조대원들은소형에어재키와 드릴을 이용해 구멍을 50㎝가까이 벌렸다.
구조대원은 틈새를 통해 柳양에게 생수를 적신 물수건과 산소호흡기를 들여보냈다.
『뭘 먹고 살았어요.』 『담요에 빗물을 적셔 마셨어요.배가 고파요.』 『우리 대원들중 총각이 많은데 아가씨 나오면 보고싶어해.』 『전 아직 어려요.』 마침내 오후3시30분.
구조대원들은 40㎝의 상판더미를 뚫고 생지옥에서 柳양을 광명의 빛으로 이끌어냈다.
생지옥에서의 탈출-.
인간의 의지와 소망이 빚어낸 장엄한드라마의 완결이었다.
〈康弘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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