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북극리포트>8.개수면을 건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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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5월8일(58일째)화이트 아웃,미풍,-15℃(좌표 N89°55′29"/W13°42′50") 극점은 우리에게 휴식장소이기도 하다.마지막(3차) 지원을 겸한 취재진의 경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 극점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다.모처럼 운행을 중지한 「방학」을 맞아 이를 닦고 목욕까지 했다.마침 날씨가 춥지 않아 눈목욕에 적 당하다.
며칠 전 처음 면도를 하기도 했다.자랄대로 자란 수염 끝에 고드름이 매달려 얼굴을 자꾸 자극하는 바람에 가위로 듬성듬성 잘라내버린 것이라 모양은 없지만 전보다 말끔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이 정도 「때 빼고 광 냈으면」 오늘 도착 할 지원대 손님맞이에 일단 예의는 갖춘 셈이다.
오후6시30분쯤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린다.프로펠러 두 개를 단 쌍발 트윈오터 경비행기가 한참 상공을 선회하더니 위태롭게 털썩거리며 착륙한다.우리 지원기도 고저차 1m안팎의 얼음지대에바퀴 대신 썰매를 달고 털썩대며 「캥거루 랜딩」식 착륙을 하다브레이크 와이어가 끊어졌다고 조종사가 투덜거린다.
지원대 정길순(鄭吉順.41.여)씨와 中央日報취재진들이 캐나다레졸루트 베이스캠프에서 12시간을 날아 북극까지 왔다.무전기와식량.연료 등을 새로 지원받았고 낯익은 얼굴들을 다시 만나 반갑다.비행기는 2시간 가량 머물다 이륙했다.앞 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8백㎞.이제 북극해엔 또다시 우리 다섯명만 남았다.
▲5월13일(63일째)맑음,동풍,-14℃(좌표 N89°25′55"/W60°53′43") 극점을 지나 동경에서 서경으로,동양에서 서양으로 접어든지 엿새째.그간 열흘이나 화이트 아웃이 계속되다 오늘에야 해가 비친다.러시아쪽 북위 88°를 건너면서부터 개수면이 많아지고 있다.태양각도는 계속 높아지며 날씨가 더워 얼음이 녹 고 있다.하루에도 몇 개씩 개수면을 건너다보면도보횡단이 아니라 아예 「도해(渡海)」를 한다는 느낌이다.대원모두 개수면에 익숙해져 있고 2차보급때(4월13일) 지원받은 썰매도 완벽해 아직 운행이 막히진 않는다.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캐나다쪽 근해에 다가갈수록 개수면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너비 수십m나 되는 개수면을 만나면 앞이 막막해진다.김범택(金凡澤.32),이근배(李根培.33.이상 마산산악동지회)대원이 이미얼음처럼 차가운 북극해에 「잠수」를 해 소동을 치 른 바 있다.지금까지가 산(난빙)과의 싸움이었다면 앞으로는 물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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