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북극리포트>6.2차 보급이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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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4월13일(33일째)날씨 화이트아웃,-11℃(좌표 N85°38′56"/E91°35′12") 식량담당 이근배(李根培.33)대원이 아침 특별메뉴로 북어국을 내놓았다.그저께(11일)가 장기찬(張基瓚.41)대원 생일이었고 오늘은 내 생일이어서 사흘새 두번이나 북어국을 먹는 행운을 누린다.동갑내기인 기찬이와 나는 제천중.고 동기 (22회)인데다 한때 회사동료(현대시멘트)였으며 제천산악회초창기 멤버로 20여년째 같이 산을 탔다.며칠전부터 그는 발가락 물집 때문에,나는 발목 부상 때문에 같이절뚝거리고 있으니 우리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박자」를 맞추고 있는 셈 이다.그의 건투를 빈다.
▲4월17일(37일째)맑음,무풍(無風),-27℃(좌표 N86°05′50"/E89°59′57") 영하 30도 가까이 수은주가 떨어지는데도 덥다.무거운 짐을 끌고 낑낑거리다보면 금세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해져 짜증이 날 지경이다.모자를 벗으니 땀에젖은 머리카락이 1분도 안돼 꽁꽁 얼어붙는다.고어텍스로 만든 오버 트러우저(바람막 이용 겉옷)를 벗고 아예 파일겉옷 차림만으로 운행한다.몸에서 나는 열과 차가운 대기가 접촉하며 안경에성에가 끼고 땀이 자꾸 눈에 들어와 따갑다.이럴 땐 바람이라도불어줬으면 좋겠다.바람이 있어도 걱정,없어도 걱정이다.낮12시쯤 북 위 86도를 넘었다.출발지인 아크티췌스키곶(N81°16'30")에서 여기까지 부서진 고물썰매와 함께 산(難氷)넘고 물(開水面)을 건너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5백㎞를 넘게 운행했다.최근엔 운행이 꽤 순조로웠다.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만에 1도(1백12㎞)를 주파한 적도 있다.난빙도 많이 수그러들어 우리의 발길을 돕고 있다.그러나 여기에서 극점까지만 해도 서울~부산 거리 이상인 4백50㎞가 남았으며 목표지인 캐나다 워드헌터섬까지는 약1천3백㎞를 더 가야 한다 .
정오때 계측한 태양각도가 21도나 됐다.지난 10일보다 5도이상 솟았다.앞으로 하지까지 계속 더 높아질 것이다.해가 솟을수록 날이 덥고 얼음은 빨리 녹으므로 우리의 갈 길이 바빠진다. 백야는 이미 시작됐다.오전2시인데도 대낮처럼 환하다.위도1도 운행때마다 소주잔 1잔분량씩의 위스키 축배로 자축하는 것이우리의 기쁨이다.그러나 이것마저 20일전 개수면에 위스키병을 처박는 바람에 그냥 쓸쓸히 넘겼다.우리의 작은「기 념식」을 위해서라도 보급 헬리콥터가 빨리 와야 할텐데….
▲4월20일(40일째)맑음,남남풍,-24℃(좌표 N86°43′26"/E89°34′03") 드디어 기다리던 새 썰매가 왔다.그동안 여러차례 소리만 들리고 비행기는 보이지 않아 애를 태우더니 오후7시쯤 프로펠러소리가 가깝게 들린다.환청이 아닌 진짜 헬리콥터가 한국화이버에서 새로 제작한 멋진 썰매 5대와 연료.식량 등을 싣 고왔다.그간 애먹이던 버너를 교체했고 식량 30일분,연료 50ℓ를 보충했다.썰매에 로프를 다는 등 장비정리로 인해 자정을 넘겨서야 잠자리에 든다.대원들이 오랜만에 큰소리로 떠들고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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