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결과에 영향 안 받으려면 내달이라도 당장 6자회담 열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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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중인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右>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방장관을 만나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워싱턴=뉴시스]

북핵 6자회담이 중대 고비에 접어들었다.

북한이 6자회담의 최대 현안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핵 협력 활동의 자진 신고를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28일 오전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미국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보려고 우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혹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달 초 열린 제네바 북·미 협의에서 미국은 북한의 입장과 체면을 고려한 절충안을 제시하고 응답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미국의 제안은 “공식 신고문 이외의 별도 문서에 기재하는 등 형식엔 구애받지 않을 테니 과거 우라늄 농축을 한 사실만은 반드시 시인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시인만 하면 테러지원국 해제 등 다음 단계 조치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날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공식 담화의 형식을 빌려 무게도 실었고 어조도 단호했다.

담화문에서 읽히는 북한의 의도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UEP 문제는 접어두고 빨리 테러지정국 해제 등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2차 북핵 위기를 부른 UEP 문제와 시리아로의 핵확산 협력 의혹을 어물쩍 넘어가는 건 미국으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다. 자칫 6자회담의 장기 공전도 초래할 수 있다.

대부분의 북핵 관계자는 그러나 “북한이 판을 깨려는 의사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담화문에 미국의 태도 변화를 강조할 뿐 회담을 거부하겠다는 표현이 없다는 점에서다. 현재 제네바 협의 이후 뉴욕 채널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북·미 간 후속 협의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점도 그 근거다.

과거의 북한 협상 형태로 볼 때 이번 담화 때문에 상황을 비관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은 대체로 협상의 최종 국면에서는 강수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합의 직전 몸값을 최대한 올리기 위해 버틸 데까지 버티는 전술은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북한에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은 물론 한국의 외교장관까지 ‘인내력의 한계’를 언급하고 나섰다. 북핵 6자회담의 향방은 힐 차관보가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 수주 안에 결판이 날 듯한 분위기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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