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내딸아…잘 헤어질 남자 만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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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오픈하우스,
256쪽, 1만2000원

엄마는 옛날에 어떤 사랑을 했고, 언제 마음이 아파 몰래 눈물을 흘렸을까. 감정이 없는 듯 때론 무뎌 보이고, 힘든 일도 거뜬히 해내는 슈퍼우먼으로 변했다가도 때론 잔소리를 하는 그냥 ‘사람’으로 엄마를 생각해보진 않았는지. 엄마는 한 명의 ‘여자’이자 자식들과 똑같이 한때 젊은 생을 살았던 인생의 선배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작가 공지영(사진)이 20대로 접어든 딸 위녕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엮어 산문집을 냈다. 성(姓)이 각각 다른 세 자녀를 키우고 있기에 평범한 사람들보다 왠지 가족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가 많을 듯하다. 그러나 ‘수영장에 가야 할 텐데’ ‘시험은 잘 봤을까’ 등 소소한 걱정을 하는 그는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다.

어엿한 성인으로 세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는 딸에게 작가는 “세상은 위험해” “밤 늦게 다니지 마”라고 잔소리 하는 대신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라” “사랑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준다. “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상처와 배신, 눈물로 얼룩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음껏 사랑해야 한다. 추억은 공허함보다 나은 까닭이다. “그래.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냉소적인 것, 소위 쿨한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인생은 상처 받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공허는 후회조차 할 수 없어서 쿨(cool)하다 못해 서늘(chill)해져 버린다는 거지.”

40대 중반의 작가는 딸과 같은 나이로 돌아가 인생을 함께 고민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딸에게 쓴 편지는 곧 자신에게 쓴 것이나 다름없다. “삶이 힘들까 봐, 너는 두렵다고 했지. 그런데 말이야. 그래도 모두가 살아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르막은 다 올라보니 오르막일 뿐인 거야. 가까이 가면 그건 그저 걸을 만한 평지로 보이거든.”

인생에서 더 이상 달콤한 솜사탕 맛이 느껴지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신화 속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어찌됐든 계속 뚜벅뚜벅 살아가야 한다. 그 가운데 큰 힘이 돼주는 것은 나를 믿는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이다. “너는 아직 젊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다. 그것을 믿어라. 네가 달리고 있을 때에도 설사 네가 멈추어 울고 서 있을 때에도 나는 너를 응원할거야.”

작가는 자신이 읽었던 다양한 책들에 대한 감동을 빌어 딸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에필로그에는 딸 위녕의 답장도 들어있다. “당신은 제게 분명 외로움을 주었지만,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진정한 성장의 자유도 함께 주었습니다. 수없이 상처입고 방황하고 실패한 저를 당신이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강한 척 하지 않는 엄마. 나약함과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는 솔직한 엄마의 인생은 이 땅의 모든 자식들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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