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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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나는 자와 남은 자(21) 승호를 막아선필승이가 그의 앞가슴을 막아섰다.
『이건,오기로 서방질 할 일이 아녀.참으라니까.』 『놔두쇼.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
저놈은 누가 손을 봐도 조만간 손을 볼 놈이니까.떡 본 김에제사 지낸다고 내친 김에 혼쭐을 좀 내야 쓰겠소.』 창수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자신을 막아선 필승이의 작은 몸을 옆으로밀치는가 하자 승호가 창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피할 사이도 없이 갑작스레 달려드는 승호의 몸을 잡으려 손을 내미는 순간 퍽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승호가 머리 로 창수의 얼굴을 받아버렸던 것이다.
어이쿠,소리와 함께 뒷걸음질을 치며 얼굴을 닦는 창수의 손에피가 묻어났다.입술을 적시며 코피가 흘러내리는 창수를 향해 승호가 다시 한번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을 피하듯 창수가 허리를 숙였다.그와 함께 승호의 몸통을 감아쥐는가 하자 어느새 승호의 몸은 창수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었다.번쩍 들려졌던 승호의 몸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승호의 어깻죽지를 잡아 일으킨 창수가이번에는 그의 몸을 등에 엎는가 하자,다시 한번 땅바닥에 들어메쳤다. 피가 흐르는 코밑을 훔치며 껑충 뛰어오르듯 다가선 창수가 승호의 몸을 몇 번 밟아댔다.뒤에 물러나 있던 필승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뭐래.저럴 줄 알았다니까.』 웃통을 벗은채 정신없이 나자빠진 승호의 머리를 썩은 호박 차듯 내지르고 나서 창수가 돌아섰다.
『어어,드러워서.이거야 숲 밖에 난 도깨비 신세 아닌가 말여.별놈이 다 손을 대게 만드네.』 빨랫감처럼 쑤셔박혀 있는 승호에게 다가간 필승이가 벗은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이 사람아 정신채려! 내가 그러지 말라니까,왜 이도 안 난것이 뼈다구 추렴을 하겠다고 대들어.』 창수가 코피를 막느라 몇 번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중얼거렸다.
『둬 두쇼.뒈지진 않을 테니.그놈은 몰매 맞아 쌀 놈인데 나한테 걸려 그만하길 다행인 거야.제놈이 더 잘 알 테니까.』 혼자 어정어정 걸어가면서 창수가 혼자 중얼거렸다.
『영감 죽고 처음이라더니… 내 오늘 몸은 풀었다만,별 잡놈한테 손을 대고 났더니 내 손만 더러워졌네.』 둘러섰던 사람들이창수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지금 저 사람이 몰매 맞을 놈이라는 게 무슨 소리야.승호놈도 바로 첩자질한 그놈들과 한통속인가?』 『그게 아니라 얘기할때는 죽여 살려 하며 앞장서서 초를 치다가 막상 왜놈들과 붙을때는 뒷간에 가 숨어서 쌍판도 안 내밀었던 걸 두고 하는 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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