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어떤 市長 당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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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평생 영화(榮華)를 누리던 고위 관리가 죽음을 맞아 찬란하게 장식된 가마를 타고 저승의 법정에 이르렀다.「죽음의 신(神)」이『그대는 어떤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렀느냐』고 묻자 관리는 이렇게 대답했다.『오랫동안 한 지방의 총독을 지냈지만 병약했던 탓에 스스로 그 지역을 다스리지는 못했습니다.저는 먹고자고 마시기만 했을뿐 비서관이 모든 일을 처리했고 저는 그저 서명만 했지요.』 이 말을 들은 「죽음의 신」은 이 사람을 천국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다.곁에 있던 다른 신이 거세게 항의했다.마땅히 지옥에 보내져야 할 사람이 아니냐는 것이었다.「죽음의신」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저 사람은 바 보잖소.만약 저같은 바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그 지역을스스로 다스렸다면 한 지역 전체를 파멸 속에 빠뜨렸을 것이오.
그게 저 사람을 천국으로 보내는 이유요.』 18세기 제정(帝政)러시아 시대의 시인 크루일로프가 쓴 우화(寓話)가운데 하나다.이 우화는 당시 관료사회의 부패를 꼬집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재판제도의 불합리성을 날카롭게 비판해 당대엔 읽히지조차 못했다.이 우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 은 개개인의 능력이나 청렴 여부에 대한 가치기준이 경우에 따라선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크루일로프의 풍자정신이다.
아닌게 아니라 유능하고 청렴한 사람이「지옥」엘 가거나,무능하고 청렴하지도 못한 사람이 「천당」엘 가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천당」과「지옥」을 여러차례 왕래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그래서 「천당행」을 즐거워할 것도 없고 ,「지옥행」을기분나빠할 것도 없는 게 이 세상이다.
한 지방도시의 시장 당선자가 좋은 예다.시장 재임때「장한 청백리」「한국의 잠롱」등으로 불리면서 수범(垂範)공직자로 표창까지 받았던 그가 공직자 재산공개때 집 4채와 많은 부동산등 18억원의 재산가로 밝혀지면서 그 자리를 물러난게 93년 10월이었다. 2년도 안돼 시민의 선택으로 그 자리에 되돌아왔으니 불과 몇년동안 세차례나 「천당」과 「지옥」을 왕래한 셈이다.
2년 전의 개혁.사정(司正)바람에 문제가 없었다면 시민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되고,시민들의 선택이 옳다면 당시의 개혁.
사정바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된다.
과연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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