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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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난 자와 남은 자(20)『똥이 나오더라?그거야 그렇지.누가 대신 눠 줄 수야 없는 일이지.그러나 말이다,사람이 피투성이가 돼서 죽어자빠지는 판인데 너는 뒷간 갈 생각 밖에 나는 게 없더라 그말 아니겠냐?』 고승호가 탄가루를뒤집어 쓴 시커먼 얼굴로 사내를 막아섰다.
『말이라는 게 어 해서 다르고 아 해서 다른데,너 지금 무신소리를 하고있는 겨?』 『나는,어도 아니고 아도 아니다.그냥 네 수작이 돼먹지 않았다,그말을 하는 거지.』 눈알을 부라리면서 승호가 사내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비썩 마른 놈이… 이게 죽을라고 환장을 했나.이거를 그냥 허리를 분질러 줘 버려.
『너 어디서 굴러온 말뼉다귀인지는 모르겠다만,보니 별로 얼굴도 익지가 않구만.너 지금 어디다 대고 구린 아가리를 놀리고 있는지나 알고 허는 소리냐?』 사내가 대세게 나섰다.
『아다마다.네 놈 상판에다 대고 하는 말이지.』 『어허? 갈수록.이놈이 피골상접에다 얼까지 쑥 빠진 놈일세.코피가 터지겠냐? 드잽이를 한번 뜨겠냐?』 승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사내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사내가 비실비실 웃으며 그 손을 툭 쳐냈다. 『왜가리가 들었다가는 형님하자고 하겠네.귀 안 먹었으니까 조근조근 말해라 임마,소나기 맞은 중 상판대기 해가지고….』 『어허,점점,이놈 봐라!』 옷이랄 것도 없는 누더기,꺼멓게 탄가루가 엉켜붙은 웃옷을 벗어던지면서 승호가 소리쳤다.
『너 이 새끼 한번 붙자.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이거야,오장이 뒤집혀서 못 봐 주겠네.』 웃통을 벗어부친 승호를따라 사내가 빙긋이 웃으며 방파제 밑 공터로 걸어갔다.작은 키에 걸음도 날쌔게 그들을 따라간 영필이가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서면서 승호에게 말했다.
『자네 이 사람 이름도 못 들어 봤어? 조창수라면 인동이 다알던 씨름꾼이여.뭘 믿고 자네가 지금 이러는 거여.다쳐도 크게다칠 텐데.』 잠시 사내를,조창수라는 사내를 승호가 훑어보았다.상판은 말대가리처럼 길어가지고,네 놈이 씨름꾼이면 나는 호랑이를 잡았겠다.
『세상에 좆 무서워서 시집 못 가는 년 있다더냐? 오늘이 누구 제삿날인지는 두고 보면 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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