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금융위원장, 금산분리 완화안 첫 언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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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이른바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업이 사모펀드(PEF)에 투자해 은행을 간접적으로 소유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이런 방식은 가능하지만 앞으로 규제를 더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전광우(그림) 금융위원장은 26일 “PEF와 연기금 등 이해관계의 충돌 가능성이 작은 방법을 통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부 출범 이후 금융정책 책임자가 구체적인 방안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은 PEF가 금융자본으로 간주돼 은행 지분을 4% 이상 갖기 위해선 PEF에 산업자본의 출자비율이 10% 이하여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10%로 묶여 있는 산업자본의 PEF 출자비율을 15% 또는 20%로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아직 정확한 비율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건은 이 같은 방식으로 은행에 투자하려는 기업이 얼마나 될 것인지다. 기업이 PEF에 10% 이상 투자하더라도 경영에 참가할 수 없는 재무적 투자자 자격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실장은 “은행의 수익이 나빠지고 있는 데다 미래가 불투명해 경영 참여 없이 돈만 대는 투자에 얼마나 많은 기업이 매력을 느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편 기업이 4%까지만 은행 주식을 직접 보유할 수 있도록 한 규제는 당분간 유지되거나 소폭 상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위원장은 “금산분리 완화가 일각에서 우려하는 재벌의 은행 지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산업·우리·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의 민영화를 위해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하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는 PEF 등을 통한 간접 소유로 물꼬를 튼 뒤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규제를 추가로 완화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글=김준현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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