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대명작 러시아발레"결혼식" 고향땅서 초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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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불의 제전』을 작곡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곡에 나탈리아 곤차로바가 의상을 맡고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가 안무해 20세기 최고 명작의 하나로 손꼽히는 러시아 발레 『결혼식』.이 환상적인발레가 지난 1923년 파리에서의 초연이후 70여 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17일 고향인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무대에 올랐다.
러시아 농부의 전통적인 결혼식 이야기에 현대 기법을 가미,이른바 「전위 고전」(아방가드르 클래식)으로 분류되며 당대의 혁명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았던 『결혼식』이 러시아 발레단에 의해 고향땅에서 공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또한 러시아 초연이라는 점을 감안,70여년전의 안무.세트.음악등을 충실하게 재현하는데초점이 맞춰졌다.
『결혼식』이 올려진 무소르그스키극장의 발레단장인 보야르키코프는 『러시아무용사에 있어 획기적 사건』이라며 『러시아의 영혼이담긴 과거 유산을 되찾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발레를 최초로 안무한 니진스카는 「20세기 춤의 화신」이라고 극찬받는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동생으로 러시아 왕립발레학교출신이다.20세기로 접어들던 무렵 새로운 사상과 자유로 활기가넘쳤던 페테르부르크에서 잠시 살았던 그녀는 당 시의 자유분방한풍토와 러시아의 전통을 결합,『결혼식』이라는 명작을 산출해냈다.따라서 『결혼식』은 서구 현대발레의 흐름을 이으면서 러시아의고유성을 표출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 이후 『결혼식』은 수난을 겪게된다.
사회주의 예술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러시아에서의 공연이 금지됐기 때문이다.『결혼식』은 모더니즘의 사상을 이어받아 순수하고 추상적인 형식 자체가 예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급진 적 사상을 담은 작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혁명에 이바지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어긋난다는 것이었다.이후 『결혼식』은 공산주의가 지배했던 러시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니진스카도 결국 다른 무용수들과 함께 1921년 러시아를떠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이후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80여곡이 넘는 발레를 지도했고 또 스트라빈스키,피카소,장 콕토등과의 교류로 서구 문화계의 중심인물로 부각되기도 했다.
『결혼식』의 러시아공연을 5년전부터 기획한 미국인 제작자 데이비드 에덴은 『이제야 러시아의 화려했던 문화적 저력이 부활하는 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공연은 러시아와 미국의 무용비평가가 다수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한편 미국인에 의해기획됐다는 점에서 이 공연이 러시아의 완벽한 작품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작품을 미국인이 러시아에 되돌려 주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朴正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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