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의 停戰협정파기 불장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이 최근의 쌀교섭이나 경수로 협상등을 통해 실용주의적으로제법 변화한듯한 얼굴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바뀌지 않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우리에게는 오랫동안 낯익은 그들의 대남(對南)전략으로 치장한 얼굴이다.북한에 남한 쌀 15만 t을 무상제공하기로 합의한 다음날 그런 얼굴을 우리는 또다시 보고 있다.6.25를 기해 정전협정의 파기 선언을 하겠다고 판문점(板門店)에서 북한군 장교가 유엔군 소속 미군장교에게 통보한 것이다.동포애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통해 남북한간 에 조금이라도 온기(溫氣)가 통하기를 기대했던 온 국민이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다.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無力化)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중국의 정전위 철수,중립국 감독위원회 사무실 폐쇄등 단계적으로 그런 시도를 강화해 왔다.
따라서 언젠가는 정전협정 파기를 최종단계로 설정해 놓고 그들의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 위협에 나서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일이다. 그러나 위협으로 그치는 것과 실제적으로 정전협정 파기행동에 나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정전협정을 파기한다는 것은 말의 뜻이나,논리적으로나 정전상태를 더이상 계속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교전(交戰)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
이 정전협정은 지난 42년간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억지해온 유일한 제도적 장치였다.이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위기가 조성되는 최악의 경우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 장치를 없애겠다는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물론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주한미군(駐韓美軍)철수 요구의 근거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희망하는 통일기반을 조성하자는 속셈이다.그러나 남북한 모두를 극도의 위험에 빠뜨리고 현재의 北-美,北-日,남북한간의 협력분위기를 뒤흔드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의도는 정부로서도 이미 알고 있던 일이다.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정전협정 파기라는 말이 북한에 의해거론된 것은 중대한 일이다.섣부르게 행동할 일은 아니지만 미국등 우방과의 긴밀한 협조는 물론 유엔을 통한 대 북(對北)견제등 만반의 준비는 있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