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북향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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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북향집’-전동균(1962~ )

사월인데도 눈이 쌓이었다 입술이 파란 햇볕이 지나가면은 담 밑으로 거무스레한 이마를 부끄러운 듯 내미는 잔설 위로 지난해 죽은 아이의 자전거 바퀴자국도 약봉지를 손에 든 아버지의 더운 숨소리도 잠시 흐릿하게 반짝이곤 했다 그 모습을 높다란 나무 위의 까치집이 기우뚱 내려다보곤 했다 세상의 처음처럼


빛이 들지 않는 북향집, 그래서 4월인데도 겨울처럼 입술이 파란 햇볕이 지나간다. 어느 적에 내린 눈인지 모를 잔설이 담 밑에 남아있는 북향집엔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잔설 사이로 흙은 거무스레한 이마를 내밀며 생명의 손짓을 내밀고 있다. 높다란 나무의 까치집처럼 자식을 살리려던 아버지의 더운 입김은 이제 죽은 자식을 따라 하늘 구멍에 훈풍을 불어넣고 있으니.

<박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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