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포 탈출하기 <11> 어제 밥을 먹었었다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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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12면

일러스트= 강일구

기자 초년병 시절 과거 시제의 문장을 쓸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예를 들어 ‘했다’ ‘갔다’로 문장을 마치면 데스크는 어김없이 ‘했었다’ ‘갔었다’로 고쳐 출고(出稿)했던 것이다. 선어말어미(‘-었-’) 하나를 보태 문장을 힘있게 고쳐준 선배가 고마웠다. 하지만 고쳐진 문장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책이나 신문에서 ‘~했었다’ 식의 문장을 만날 때면 십 수년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① 밥을 먹었다.

② 밥을 먹었었다.

③ A씨는 아들의 성이 현재 남편의 성과 달라 애태웠다.

④ A씨는 아들의 성이 현재 남편의 성과 달라 애태웠었다.

우리말에서 과거 시제를 표현할 때는 문장 ①, ③처럼 어미 ‘-았/었-’ 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았었/었었-’은 과거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 이른바 ‘대과거’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일반적인 경우에까지 ②처럼 쓰는 것은 군더더기다. 단순한 과거 시제로 나타내면 충분하다. 강조하고 싶으면 ‘아까’나 ‘한참 전에’ 같은 부사어를 넣으면 된다. ‘아까 밥을 먹었다’ ‘한참 전에 먹었다’ 정도면 족하다.

우리말에도 대과거나 과거완료가 있다. 드물지만 중세 국어에도 나타난다. 다만 영문법과 달리 많이 사용되지 않을 뿐이다. 예컨대 “내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떠났었다” 대신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와 같이 ‘없다’라는 동사를 보태 완료의 뜻을 나타내는 식이다. 아껴 써야 할 것을 마구 쓰니 ‘우리말이 번역어투에 오염됐다’는 말이 나온다.

‘-았었/었었-’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장 ④에서처럼 앞뒤의 상황이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분명하게 단절될 때다. 문장 ③은 단순히 과거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다. A씨는 예전에 애를 태웠다가 지금은 마음이 편해졌을 수도 있고, 아직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에 비해 문장 ④는 제도 변경이나 심경 변화 등으로, 사건이 완결됐음을 함축한다. 결과적으로 A씨는 더 이상 애태우고 있지 않다. 미묘한 말맛을 살리는 과거완료를 귀하게 대접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