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北美경수로협상 타결-한반도 긴장완화 큰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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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주이상 걸린「마라톤 교섭」을 거쳐 대북(對北)경수로제공 문제를 둘러싼 北-美교섭이 겨우 타결됐다.우선 우리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해야 할 것이다.
만약 北-美교섭이 결렬됐다면 북한이 핵동결을 일부 해제,사용한 후 핵연료 재처리에 나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평양이 그런 방향으로 갔다면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고,이는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명백히 하는 것이 었다.
이번 北-美합의로 이러한 사태를 피하게 됐다.이 하나를 보더라도 이번 합의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난 13일 콸라룸푸르에서 발표된 北-美 공동발표문을 보고 느낀 점은「이런 내용이라면 1개월전에 합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그것은 틀림없이 당초부터「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내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공동발표문에서 어디를 찾아봐도 북한에 제공되는 경수로가 이른바「한국형」이며,경수로 프로젝트 추진의「중심적 역할」을 맡는 것도 한국이라고 하는 표현은 없다.즉,과거 2개월간의 北-美교섭에서 북한측이 강하게 반발해온 점은 北-美합의문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을 우리는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지난해 10월21일 성립된 北-美간 합의의 틀에 비춰보면 그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라 해도 좋다.합의의 틀이 규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 뿐이기 때문이다.
첫째,미국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책임지고 맡는다.
둘째,미국은 자신의 주도아래 경수로 자금및 설비를 보장하기 위해 국제 컨소시엄을 조직한다.셋째,국제 컨소시엄을 대표하는 미국은 경수로 프로젝트에 있어 북한과 절충하는 주요한 창구가 된다. 北-美간 합의의 틀에는 북한에 제공되는 경수로가「한국형」으로 명기돼 있지 않다.그러나 합의의 틀 본문(本文)과 함께北-美간에 체결된「대외비 각서」안의 기술(記述)을 조합해 생각하면 북한이 실질적으로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이지 않 을수 없는 것은 이미 명명백백(明明白白)했다.미국의 라이선스아래 건설되는 1천㎿급의 경수로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3월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설립된후 한국정부가 이번의 콸라룸푸르합의에 대 해 보여준 것과 같은입장을 취했더라면 경수로 제공을 둘러싼 문제는 보다 빨리「공급협정」체결로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물론 한국이「한국형」 명기와「한국의 중심적 역할」 보증을 강력히 촉구한 사정은 이해한다.北-美주도로,특히 북한 페이스로 상황이 진전됨을 한국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에는 다른 대응책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번 北-美합의는 당초부터「이 방법밖에없다」고 하는 내용 그대로였다.만일 한국정부가 좀더 빨리 이번과 같은 자세를 보였다면 우리는 북한의 핵동결 해제 위험성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앞으로 KEDO 무대로 옮겨 진행되는 남북간 경수로 프로젝트협상은 이번 北-美합의처럼 살얼음판을 걷는 단계를 맞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그럴 경우 한국이 여유와 아량을 갖고 북한에 대응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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