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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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난 자와 남은 자(9) 『아니,명조엄마 사정이라고 뭐 다를 거 있어?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구,밤긴 거야 나나 거기나 다 같은 거지 뭘 그래.』 『전 아직 그런 거 몰라요.』 『내숭은….』 준태네가 눈물을 글썽거리던 게언제냐 싶은 얼굴로 은례에게 눈을 흘겼다.
『아니 그럼 명조 엄마는,밤에 몸이 끓지도 않아? 한밤에 밖에 나가 몸에 물이라도 부어야 잠을 자는 거,그런 거 몰라?』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하더니만 남세스럽기는.이 여자가 이러니까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들으며 산 거였구나.은례는 얼굴을 붉히면서 새삼스레 그녀를 바라보았다.더 붙잡고 있다가는 무슨 얘기가 나올까 모르겠다 싶어서 은례가 말했다.
『오라버니가 기다리시는데 어여 가 보세요.』 『그래, 또 봐.』 멀어져가는 준태네를 바라보다가 은례는 무슨 못 볼 것이라도 본 듯이 서둘러 아이를 등에 업었다.한밤에 몸에 물이라도 부어야 잠을 잔다니.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아서 은례는 서둘러보리밭길을 걸었다.
고추모와 호미를 들고 밭가에 서 있던 제천댁이 은례에게 물었다. 『어딜 가는데 그렇게 바뻐?』 『가긴요.』 등에 업은 아이의 엉덩이를 두들기면서 은례가 걸음을 멈췄다.
『저 여자가…준태 엄마 아냐? 시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리가 있던데,어딜 간대?』 그러고 보니 소문은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은례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처음 듣는 소리네요.』 『말도 말어.저 여자 그냥 뒀다간 동네 보리밭 남아 날까 무섭다고들 그래.남자 없이는 못 잔다구,무슨 여자가 제입으로 그러고 다닌대.입에 풀칠이나 할까 싶은데 어디서 그런 재간은 있나 몰라.허기사,도둑놈도 제집 문단속은 잘 한다니 까,그것도 타고 나야 되는 일이지.그래 어딜 간대?』 『오빠네 집에요.』 『이젠 또,눈치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게 생겼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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