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미라와 遺訓통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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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내세(來世)에 영혼이 다시 돌아와 잠들기 위해서는 육신(肉身)이 보존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미라는 이런 내세신앙의 산물(産物)이다.당초는 파라오의 특권이었지만 후대로 가면서 일반인에게도 허용됐다.물론 업자에게 지불하는 돈에 의해 처리방법이 결정되므로 결국은 부자들만 훌륭한 미라로 남을 수 있긴 했지만 말이다.
76년 9월 파리의 인류학박물관에서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있던 람세스 2세의 미라를 구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먼저 부식의 원인이 버섯모양의 균류(菌類)에 의한 것이었음을밝혀냈다.문제는 치료.유일한 방법은 방사선치료 였지만 이런 방법이 인체조직,특히「물결처럼 부드러운 금발머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자칫 대머리가 돼버린람세스 2세를 이집트에 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면밀한 표본실험을 거친 뒤 방사선치료를 하 기로 결단이 내려졌다.결과는성공이었고 기원전 13세기에 사망한 람세스 2세는 3천여년을 격(隔)한 현대과학의 도움으로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전통과 신앙에 걸맞은 온전한 안식처를 다시 갖출 수 있었다.
바로 같은 시기,마오쩌둥(毛澤東)의 주치의였던 리즈쑤이(李志綏)는 毛의 시신을 영구 보존키로 했다는 정치국의 결정을 통고받았다.『毛주석은 56년에 화장(火葬)서약서에 가장 먼저 서명한 분』이라는 李의 반론도 「정치국의 결정」이란 말로 간단히 물리쳐졌다.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毛의 시신은 뇌를 제외한 모든 장기가 제거되고 그 안이 포름알데히드를 흠뻑 적신 솜으로 채워진 채 헬륨으로 가득찬 유리관(棺)안에 영구 보존됐다. 20세기의 미라는 이처럼 신앙의 형태가 아닌 정치행위의 산물이다.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이나,하노이 바딘광장의 호치민(胡志明)이나,베이징(北京)천안문광장의 毛나 스스로 내세를 위한 영혼의 안주처로 육신의 보존을 원했을 리는 만무 해 보인다.모두가 이들의 권위를 이용하려는 후계자그룹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북한이 지난해 7월 사망한 김일성(金日成)주석의 시신을 영구보존키로 최종결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상관할 바는 아니나 대중적 카리스마가 부족한 후계자가 망인(亡人)의 육신과 그가 남긴 유훈(遺訓)에 기대려는 것같아 어쩐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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