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수로,남북협력 초석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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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결국 북한(北韓)이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였다.이로써 지난해10월 마련된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가 북한의 딴청으로 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이행단계로 접어들게 됐다.이는 합의문에 명기된 북한의 핵(核)개발계획 동결,北- 美 관계개선,남북한 대화의 재개약속이 한걸음 더 실행단계로 들어서게 됐음을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과 북한의 콸라룸푸르 경수로협상 합의문에 한국형을 명시적으로 못박는데까지 이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그러나 한국형 경수로제공을 설립규약으로 명기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공급의 주체라는데 북한의 동의를 받아내 고, 또 한국형 경수로에만 있는 특징이 합의문에 반영된 것은 우리측 요구가 사실상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수로 공급과 관련돼 이제 남은 과제는 KEDO와 북한간에 체결될 공급계약이다.이 계약을 위한 협상이 성공돼야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합의가 제대로 이행된다고 볼 수 있다.이 협상이 앞으로 북한과의 씨름에서 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또 하나의 어려운 고비다.지금까지 북한의 행동양식으로 보아 예기치 않은 조건들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요구사항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많아서다. 그러한 북한의 행동은 주로 北-美 합의문서가 모호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이번 콸라룸푸르의 합의가 간접적으로 한국형을 보장하는 장치를 2중,3중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예기치 않은 행동에 대해 철저한 대비가 된 것은 아니다.
특히 앞으로 있게 될 경수로공급협상에서 논란이 예상되는 문제는 북한이 추가로 요구하고 나선 10억달러 규모의 부대시설이다.콸라룸푸르 회담에서는 북한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지 않고,통상적 경수로 공급범위에서 일부를 추가지원하는데 미국 이 동의했다고 하지만 북한의 생리로 보아 손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요구는 물론 제네바합의에 없는 것이므로KEDO와 북한이 논의할 일이 아니다.만약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그러한 시설을 요구한다면 어디까지나 미국과 북한의 문제로 국한돼야 한다.미국과 북한만의 교섭으로 우리에게 추가재 정부담을 요구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북한이 정 그러한 시설을 필요로 하여 우리에게 직접 요청한다면 고려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남북한의 민족간 경제협력과경제교류의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이러한 문제점들은 남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경수로 협상의 타결은 남북한관계와 관련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북한의 행동에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긴하나 이번 경수로 협상에서 나타난 북한의 행동에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경수로문제를 카드화하여 北-美평화협정등 정치공세를 펼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시종 실무적인 태도를 보인 점이다.이는 북한이 그만큼 경제문제와 대외관계개선을 열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정부로서는 이런 점에 착안,경제교류를 통해 대화의 폭을 넓히며 신뢰의 바탕을 다지는 것도 깊이 생각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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