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10년 전 첫 차부터 SM5 생산라인 지킨 최정용 공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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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인 삼성전자도 뒤로하고 부산에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1998년 3월 자신의 손을 거쳐간 SM5 1호차가 나왔다. 그리고 10년을 곁에서 지켜온 SM5 생산라인에서 20일 60만 번째 차량이 탄생한다.

“98년 첫 차가 나올 때처럼 가슴이 떨립니다. 60만 번째 고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1호차나 60만 번째 차나 품질이 똑같다는 겁니다.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갖춰야 할 조건이죠.”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리페어 공정장을 맡고 있는 최정용(44·사진)씨는 60만 번째 SM5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이지만 10여 년을 부산·경남 지역에서 살아와서인지 경상도 사투리가 물씬 묻어 나왔다. 리페어 공정은 출고되기 직전에 차량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견되면 말끔하게 수리해 내보내는 라인이다.

그는 고향에서 농고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컬러TV 라인을 관리했다. 젊었을 적 인근 기아자동차에 취직하고 싶었지만,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 95년 초 삼성그룹이 21세기 수종사업으로 자동차를 내걸고 지원자를 뽑았다.

“꼭 해보고 싶던 분야라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손을 들었죠. 결국 현장 1기가 돼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공장 터를 매립하고 있더군요. 막막했지만 공장을 하나하나 지어가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전자부품만 다뤄왔던 터라 자동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일본 닛산의 생산라인에 2개월간 연수를 다녀왔다. 그때 받은 설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단다.

“어깨 너머로 생산과정을 지켜보게 할 뿐 일본인들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동선도 모르는 ‘초보운전자’였는데 배려가 전혀 없었죠. 시간이 좀 지나 쉬는 시간이면 지도원이나 작업자를 붙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배워야 했습니다. 몸에 숙달되지 않다 보니까, 하느라고 해도 안 될 때가 많더군요. 눈물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1호차는 오랜 산고 끝에 얻은 자식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2000년 회사가 프랑스 르노로 넘어가기까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매립지에 공장을 세우고 첫 차를 만들어내던 동료가 하나 둘 곁을 떠나야 했다. 닛산에 함께 연수를 간 50여 명 가운데 절반만 남았다. 좌절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자신이 원하면 삼성전자로 복귀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남기로 했다. ‘큰 꿈을 꾸고 왔기 때문에 회사와 같이 가겠다’는 이유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98년에 만든 SM520을 타고 다닌다. 개인적으로 2005년 이후에 나온 새 모델보다 옛 모델에 애정을 많이 느낀단다.

“제가 만들었지만 참 좋은 차입니다. 배터리 바꾼 것 빼고는 고친 게 없어요. 카센터 망할까봐 걱정도 많이 했답니다.” 그는 SM5가 자식 같은 존재인 양 출고되는 차량을 마냥 어루만졌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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