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엇나간 일본의 쌀카드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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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과 미국의 경수로 협상추이에 온통 이목이 쏠려 있던 8일정부는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했다.대북(對北)곡물지원과 관련,일본(日本)에 대해 자중하도록 부총리가 직접 나서서 촉구하는 내용이었다.일본이 곡물을 먼저 제공할 경우『한일( 韓日)관계에도좋지않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우려됨을 강하게 지적한다』는 이 성명은 외교관행상 지극히 드문 경고성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북한에 대해 무조건 쌀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지 2주일이 되도록 가타 부타 아무런 반응이 없어 궁금하던 차에 이처럼 강경한분위기의 성명에 어리둥절한 느낌을 가진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 성명이 나온 전후의 맥락을 보면 정부도 나름대로상당한 고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진행중인 미국과의 경수로협상을 자기네 입맛에 맞도록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타결된 것처럼 일방적으로 발표한데 뒤이어,8일에는 쌀지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베이징(北京)에서 남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문제는 북한의 이러한 의사가 직접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북한 접촉 통로를거쳐 나왔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한 관계의 장래나,한일(韓日)관계에서나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북한이 아직도 남한을 배제한채 미국.일본과의 관계개선만을 추구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일본에 관한한 쌀문제를 계기로 그러한 북한과 일본의 국가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세력들의 제휴로 양자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면 그만큼 남북한 관계는 손상받게 마련이다.
설사 일본정부의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북한과 접촉하고 있는정치인등이 민간차원을 핑계로 대북접근을 서두를 가능성이 많다.
베이징에서 남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일본을 통해 나왔다는 것은 그들이 계속 북한과 뒷거래해왔다는 반증이다 .
더욱이 그러한 거래의 주체가 「한일합방」을 합리화한 와타나베前부총리 같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한세력들은 벌써 『한국의 이해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있을 정도다.대북 곡물지원문제등 남북한관계 전반에 대한 일본정부의 역할에 대해 현명한 처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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