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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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거지는 벌떡 일어나더니 심호흡을 길게 했다.마치 물을 만난 고기 같이 그의 눈에서는 기이한 파란 광채가 뻗어 나왔다.거지는 비닐을 묘하게 접어 뒷주머니에 끼워 넣더니 희경보고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희경이 일어나자 거지는 희경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어디나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지.내 당신이동업자로 참여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좋은 선물을 하나 줄테니까 눈을 감아.』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희경이 몸을 움츠렸다. 『난 두번 말하는 것이 제일 싫어.』 그래도 희경은 눈을 감지 않았다.이 남자 같으면 능히 아치 위에서도 강간할 남자다.화성 연쇄살인사건이 어떤 사건인가.같은 동네에서 연쇄적으로 강간 살인을 하지 않았는가.거지는 피식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희경을 세게 밀어버렸다.
희경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면서 눈을 질끈 감는데 거지가 웃으면서 자기를 향해 떨어져 다가오는 것이 얼핏 보였다.희경의 어깨를 거지의 손이 세게 붙들더니 희경은 어느덧 거지의 품에 깊숙이 안겨졌다.희경은 너무도 놀라 눈을 감을 수 가 없었다.
그녀의 눈앞으로 어지럽게 교각이며 자동차,시멘트 바닥이 뒤엉켜보였다.이게 마지막이구나 생각할 때 희경의 몸은 어떤 힘에 의해 세게 한번 공굴러지더니 강물을 향해 똑바로 진격했다.눈앞으로 시퍼런 강물이 클로즈업돼 왔다.희 경은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했다.그런데 웬 목숨이 그렇게 모진지 정신도 잃지 않았다.희경의 귓속으로 음침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어때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 그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둔탁한 충격이 머리에 세게 다가오며 희경은 정신을 잃었다.희경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깨끗한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있었고 거지는 한쪽에서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빠져 있었다….
희경은 퍼뜩 눈을 떴다.손에 쥐고 있던 화살들이 무릎 아래로떨어졌다.그 다음은 너무도 끔찍해 회상하고 싶지 않다.희경은 잠시 호흡을 진정시키고 다시 손을 들어 과녁에 화살을 던졌다.
역시 어김없이 화살은 과녁의 중앙을 맞혔다.연놈 들….이 모든고통은 네놈들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정민수는 내가 죽인 것이아니라 네년이 죽인 것이다.내 네년을 철저히 응징하고 말리라.
오늘 저녁 희경은 김민우를 만나기로 했다.그 놈은 희경의 제의에 선선히 응했다.희경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비록 나이가 좀들긴 했지만 여전히 인기는 시들지 않았다.오늘은 그놈을 교외로데리고 나가 경동맥을 뚫어버리리라.이같이….희경의 손을 떠난 화살은 다시 과녁의 중앙에 가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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