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몸통까지 덮친 네 번째 쓰나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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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32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또 하나의 둑이 터지고 말았다. 물난리를 피해 안전지대로 몸을 옮기는 행렬이 꼬리를 잇는다. 지난해 2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란 괴물이 출현한 이후 벌써 네 번째 쓰나미다.

▶집값 하락에 따른 주택금융 부실의 표면화 ▶일부 헤지펀드의 환매 중단과 파산 ▶금융회사들의 자산 부실화와 실적 악화의 순으로 둑이 무너지더니 이번에는 월가의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부실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기에 이르렀다.

대공황 때도 잘 견뎠던 85년 전통 금융 명가(名家)의 몰락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제 월가의 몸통이 서브프라임 괴물의 제물이 되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공포와 불신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대형 투자은행 몇 개가 더 쓰러질 것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괴담이 떠돌 정도다.
미국 국채와 금·원유 등 안전자산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밀려든다. 세계 금융시장 곳곳에 촉수를 뻗쳤던 엔캐리 자금은 일본으로 급속히 환류하고 있다. 금융·외환·상품시장 어디도 온전한 곳이 없다.

혼돈이 올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살아남을 수 있음은 만고의 진리다. 분위기에 휩쓸려 우왕좌왕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중심을 잡고 한 발짝 떨어져 기다리면 좋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질서 있게 퇴각하며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고는 주변에서부터 먼 곳까지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우선 18일 열리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주목된다. 0.75%포인트 내지 1%포인트의 파격적 금리인하 조치가 예상된다. 아울러 FRB는 금융회사의 연쇄 파산을 막기 위한 별도의 유동성 공급 조치를 내놓을 전망이다. 미국 금융회사들의 1분기 실적 추정치 발표도 유심히 봐야 한다. 18일에 골드먼삭스와 리먼브러더스, 19일에는 모건스탠리가 실적치를 내놓는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이 투자자들의 불안과 불신을 당장 잠재우기는 힘들 것 같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진국들은 여전히 금리인하에 소극적이다. 인플레 걱정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통화에 대한 미 달러화의 약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원자재 투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사태를 복기해 보는 것도 유익하다. 문제의 뿌리는 미국의 집값 하락에 있다. 미 주택시장이 안정되지 않고는 사태가 개선될 수 없다. 가격조정을 빨리 마무리하면 오히려 속 시원하련만 그게 쉽지 않다. 집이란 게 삶의 터전이다 보니 사람들이 끝까지 버틴 뒤에야 손을 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기업 투자나 개인 소비에서 비롯된 부실은 환부를 도려내기가 훨씬 쉽다. 이번 사태가 생각보다 오래갈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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