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端午-陰5월5일 楚충신 屈原 죽음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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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단오(端午)는 본디 「端五」(초 닷새)라고 불렸다.음력 5월의 초 닷새날이다.일명 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일년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예부터 설.한식(寒食).추석(秋夕)과 함께 4대 명절로 일컬어졌다.
또 모내기를 막 마칠 즈음이라 그해의 풍년을 비는 기풍제(祈豊祭)를 올렸으며 여인들은 창포(菖蒲)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는등 다양한 민속놀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초(楚)나라에 굴원(屈原)이라는 애국시인이 있었다.본디 왕족이었던 그는 조정 대신들의 부패를 보다못해 과감한 개혁정책을 건의했다.
그러나 그의 건의는 간신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쳤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암혼했던 군주 회왕(懷王)은 간신들의 모함(謀陷)과 참언(讒言)을 듣고 그만 그를 귀양보내고 말았다.
그는 가슴 가득 울분을 안고 외로운 방랑의 길에 들어갔다.
그는 남방의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갖은 고생을 했지만 조국에대한 우국충정(憂國衷情)만은 변치 않았다.그는 이 기간에 이소(離騷).구가(九歌).구장(九章)등 주옥 같은 시를 써서 자신의 충정을 펴보였다.
후에 진(秦)이 도읍 영(영)을 침략하자 초의 사직은 경각에달리게 되었다.귀양 도중 이 소식을 들은 굴원은 너무도 원통한나머지 음력 5월5일 돌을 품고 멱라수(汨羅水.현 湖南省 長沙부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그의 나 의 62세였다.
굴원의 우국충정에 감복한 초나라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강에 나가 그를 제사지내고 용주(龍舟.용 모양의 배)놀이를 한다.단오의 유래다.
鄭 錫 元 〈한양大 중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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