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자동차주 “고맙다, 원화 약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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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1일 오후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거래에 한창이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980원을 돌파한 후 오름세가 꺾여 전날보다 4.7원 상승한 970원에 마감됐다. [연합뉴스]

환율 급등으로 외환시장에는 비상이 걸렸지만 주식시장엔 순풍이 불었다. 원-달러, 원-엔 환율이 동시에 치솟자 수출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란 기대감이 시장에 확산했다. 11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6.31포인트(1%) 오른 1641.48을 기록했다. 전날 미국 뉴욕 증시의 하락 소식에 1600 선을 위협받으며 출발한 증시가 반등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원화 약세가 주가에 마냥 호재로 작용할 수는 없다고 경계한다. 업종별로 영향을 잘 따져 봐야 한다는 주문이다.

◇환율 상승, 엇갈린 효과=KB투자증권이 코스피200 종목을 기준으로 지난해(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을 조사한 결과 수출 비중은 46.3%에 달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기업은 그만큼 수익이 는다. 환율 상승이 해당 기업 주가에 호재인 이유다. 장기적으로 보면 내수 기업에도 환율 상승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수입 원재료 가격 상승을 판매가격에 전가시킬 수 있어서다. 엔화 강세는 더 반길 만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상대인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화 약세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환율은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반영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원화가 강세였을 때 국내 증시도 오름세였다. 원화 약세의 배경에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도가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27조원을 팔았던 외국인이 올해는 그 강도를 높여 1∼2월 두 달간 12조원을 순매도했다. 이 돈을 환전하면서 달러 수요가 급증해 환율이 올랐다. 엔화 강세도 부정적 효과가 있다. 대우증권 이효근 연구원은 “저금리를 좇아 해외로 나간 일본 자금이 엔화 강세 때문에 일본으로 되돌아가면 세계 증시에선 자금이 빠지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IT·자동차 vs 석유화학·철강=업종별로는 원화 약세가 미치는 영향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업종이 수혜를 보는 종목으로 꼽힌다. KB투자증권은 원-달러 환율이 50원 상승하면 삼성전자의 연간 순익이 1조3200억원 늘 것으로 추정했다. 다른 IT 기업도 연간 순익이 1000억∼2000억원 이상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업체인 현대차와 기아차도 대표적인 원화 약세 수혜주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현대차는 500억원의 영업이익 개선 효과를 볼 것으로 CJ투자증권은 추정했다. 게다가 엔화까지 강세를 나타내면서 일본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투자증권은 자동차 업종 ‘비중 확대’ 투자 의견을 유지했다.

반면 철강과 화학·음식료 등은 원화 약세로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수출 비중이 낮은 데다 외화 부채가 많아 환율이 상승하면(원화 값이 떨어지면) 갚아야 할 이자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 KB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POSCO는 원-달러 환율이 50원 상승하면 연간 순이익이 210억원 감소한다. 원재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지만 완제품도 대부분 수출하는 조선·기계 업종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대우증권 성기종 연구원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경쟁력 상승 효과 때문에 수익성 추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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