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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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종손 아기 외할머니는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 근처 상가에서 기념품 가게를 차리고 있다.사슴뿔로 만든 브로치.목걸이.반지 등의 액세서리를 파는 관광상품점이다.
가게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꽤 큰 점포다.
하얀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반색하며 맞아준다.종손 아기 외할머니였다.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교포 2세 여성이다.싹싹하고 매우 부지런해보였다.
『누추한 데지만 좀 올라오십시오.』 길례 내외는 2층으로 안내받았다.살림집을 겸한 가게였다.
계단 맨 위 높은 곳에 기어다니는 자세로 엎드린 아기가 올라오는 사람들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길례는 깜짝 놀랐다.아기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할머니가 웃었다.
『절대로 안떨어집니다.얼마나 영리한지 몰라요.』 어글어글한 생김새의 귀여운 사내아이다.생후 1년2개월이 됐다고 한다.
『이름이 뭐예요?』 『동녘 동(東) 바다 해(海),동해랍니다.허동해.지 아버지가 지은 이름이지요.』 일본서 태어난 아이에게 「동해」라고 이름지은 한많은 청년 생각으로 잠시 뭉클했다.
아기는 낯가리지도 않고 순해 보였다.
『동해야,이리 온.』 팔을 벌린 길례의 품으로 아이는 비틀비틀 걸어와 안겼다.젖내가 풍겼다.
『잘 걷네요.여보,동해를 데리고 동대사 구경이나 하고 옵시다.』 『그게 좋겠어.』 길례의 말에 남편이 따라 나섰다.
동대사는 8세기 중엽 일본 성무(聖武)왕에 의해 창건된 절이다.금광명사천왕호국지사(金光明四天王護國之寺)라고도 불렸다.
성무왕은 아버지 문무(文武)왕에 이은 친신라(親新羅)계의 왕이었다.통일신라의 문물이 이때 물밀듯 왜섬에 닥쳤다.
나라(なら)는 이 무렵의 일본 도읍이다.「국가」의 뜻인 우리말 「나라」가 그대로 고을 이름으로 삼아진 것이다.
동대사 경내에 지어진 목조 창고 정창원(正倉院)엔 성무왕이 쓰던 애용품 등 9천여점이 수장돼 있다.
일본 학자들은 이들 유품이 대부분 당나라 것이라 우겨왔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거의 다 신라 것으로 밝혀졌다 한다.신라연구를 위한 큰 보물 무더기다.
동대사는 거대한 불상으로 유명하다.흔히 「나라의 대불(大佛)」이라 불린다.높이 5장3척5촌.요즘 칫수로 약 14.7m다.
이 불상이 지어진 것은 749년,가람이 완공되기는 751년이었으나 훗날 불타 중세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아기를 데리고 동대사 뜨락을 거니는데 사슴이 몰려온다.사슴을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어울려 노는 아기가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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