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스쿠니 ‘사전검열’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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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다음 달 12일 도쿄와 오사카에서 개봉하는 영화 ‘야스쿠니(靖國)’가 12일 집권 자민당 의원들의 사전 검열을 받게 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를 숭상하는 대표적인 종교시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는 재임 중 매년 이곳을 참배해 한국·중국 등 일제 피해국들의 많은 반발을 샀다.

이 영화는 중국중앙TV(CCTV) PD 출신으로 1989년 자유로운 영화 제작을 하고 싶다며 일본으로 건너온 리잉(李纓·45)이 97년 촬영을 시작해 지난해 완성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영화는 군대용 칼인 ‘야스쿠니도(靖國刀)’를 만들어온 칼 장인이 전쟁과 신사를 둘러싸고 펼치는 복잡한 생각을 축으로 전개된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참배와 군복 차림으로 도열한 노병들, 성조기를 흔들며 야스쿠니를 찾은 미국인의 모습도 나온다.

그런데 일부 일본 주간지들이 최근 이 영화에 중국 난징(南京) 사건 관련 사진이 들어가 있는 점 등을 들어 “객관성이 결여된 반일 영화”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자민당의 ‘전통과 창조의 모임’이란 젊은 의원 모임이 시사회를 요구했다. 9일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이 단체 회장인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의원은 이 영화에 일본 정부의 예술문화진흥기금 750만 엔(약 7000만원)이 지원된 점을 들어 “일종의 국정조사 차원”이라고 말했다.

리잉 감독과 일본 내 영화배급사 ‘아르고 픽처스’는 “지난달 베를린 국제영화제에도 공식 초청을 받은 영화로 이데올로기나 반일과는 관계가 없다”며 시사회를 거부하다가, 전체 의원을 대상으로 한다는 조건으로 12일 시사회를 열기로 했다.

리잉은 “이 영화에 반일 영화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이 싫었다” 고 말했다. 또 “일본인은 전쟁에서 죽으면 영웅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들의 심정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일본인은 이 영화를 보면서 야스쿠니와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고이즈미 전 총리도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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