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왜‘약골 달러’에 힘 못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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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중은행 외환 딜러는 “요즘 서울 외환시장에선 ‘강만수 효과’란 말이 나돈다”고 말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쪽이다. 취임 직후부터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시장에선 이를 원-달러 환율이 하락해 수출업체들이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을 두고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환율 하락 방지 효과를 뜻하는 ‘강만수 효과’는 그래서 나온 말이다.

강 장관의 등장에 맞춰 환율도 올랐다. 한 달 이상 940원대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 936.5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튿날 강 장관이 취임하면서 다시 오르기 시작해 7일엔 1년4개월 만의 최고치인 957.5원까지 치솟았다.

산업은행 외환거래팀 관계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강 장관의 발언이 환율 하락 방지 효과를 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강 장관의 발언이 외환시장의 변수로 인식되는 것은 외환시장에서 원화만이 유독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 역대 최저치, 일본 엔화에 대해선 2000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등 주요 아시아국 통화에 대해서도 약세다. 그러나 서울 외환시장에선 유독 원화에 대해 강세다. 강 장관의 발언 외에 여러 경제상황이 겹쳤기 때문이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가 문제다.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로 구성된 경상수지는 올 1월 25억98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월간으론 11년 만에 최대 적자다. 특히 무역과 관련된 상품수지는 5년 만에 적자를 냈다. 수출이 15.4% 증가했지만 수입이 31.1%나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수입이 크게 는 것은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상수지 적자는 달러화로 결제해야 할 지출이 많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기 때문에 달러 가치는 오르는 것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외국인에 대한 배당이 몰린 4월까지는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상수지만 본다면 당분간 환율이 하락하기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대량으로 처분한 뒤 이를 달러로 바꿔 나가고 있는 것도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올 들어 7일까지 거래소 시장에서만 11조950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3개월도 안 돼 지난해 전체 순매도(24조7000억원)의 절반가량을 팔아 치운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달러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도 이유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예전만큼 달러를 빌리기 쉽지 않아진 데다,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 수출업체들은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시기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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