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色 공감, 주말 드라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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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19면

‘엄마가 뿔났다’에서 어려운 시댁에 처음으로 인사 갔다 무안을 당하고 나온 이유리가 자신을 속여온 남자친구를 닦달하다 코트를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이유리는 “그거 언니가 비싼 돈 주고 사온 것”이라며 남자친구에게 가지고 오라고 한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비슷한 장면이 ‘천하일색 박정금’에도 있었다. 새엄마와 아버지 앞에서 행패를 부리고 나온 배종옥이 지갑을 두고 나온 것이다. “가져다 주겠다”는 김민종을 말리며 배종옥은 “택시 값이 없으니 차를 태워 달라”고 한다. 사소한 상황을 처리하는 두 드라마의 리얼리티에는 차이가 있다.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김혜자·이순재·강부자를 비롯해 이유진·김정현 등 젊은 연기자들까지 김수현의 드라마에서 무르익은 이들이다. 그들은 편안한 옷을 걸친 듯 그런 작가의 디테일들을 실감 나게 연기한다.

친구와 싸우고 이마를 꿰맨 이순재가 자기 다친 건 생각 안 하고 맞은 친구 꼴이 우스워 웃음보를 터뜨리는 장면이라든지, 가난한 백수건달인 줄 알았던 딸의 신랑감이 집에 찾아와 부자임을 밝히자 내키지 않았던 김혜자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변하는 장면, 혹은 김혜자가 변호사 큰딸에게 막내 동생 옷 해 준 적이 있느냐면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같은 부분들은 작가와 연기자의 콤비 플레이로 만들어 내는 뛰어난 장면들이다.

드라마 초반 애를 키워 달라는 아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돌아선 김혜자가 자신을 설득하려는 남편 말을 딱 잘라버린 뒤 “그만 좀 부려먹어. 징그러워 죽겄어”라고 할 때 그 대사와 연기의 징그러운 현실감은 백미였다.

경력 40년의 무사고 운전사가 모는 편안한 드라이브 같은 느낌이 ‘엄마가 뿔났다’의 매력이라면, ‘천하일색 박정금’은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 속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재미가 만만찮다. 앞에서 말한 장면은 배종옥과 김민종이 단 둘이 있게 되는 첫 장면을 만들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어쨌건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의 큰 아픔을 나누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잡아당긴다.

부자인 새엄마는 신분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못돼 보이는 한고은은 의외로 정에 약하고, 잘나가는 변호사 김민종은 입양아의 아픔에다 왠지 외모에서도 잘빠진 요즘 꽃미남들에 비하면 허술한 면이 많고, 의사인 손창민도 형의 과잉보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어딘가 하나씩 모자란 구석이 있는 주인공들의 배치도 재미있다.

때로는 액션극인 듯, 때로는 멜로인 듯, 또 때로는 코믹 가족극인 듯 왔다 갔다 하기는 하지만 왠지 안돼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꾸 궁금해 들여다보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천하일색 박정금’의 배종옥이나 배다른 동생 한고은이 이전 ‘내 남자의 여자’나 ‘사랑과 야망’의 캐릭터를 그대로 잇고 있는 것인데, 그 두 작품이 모두 김수현의 작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천하일색 박정금’은 여전히 거장 김수현의 자장 안에 있다 하겠다. 어쨌든 두 드라마 때문에 주말이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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