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처럼 소중한 커피 한 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호 37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밝히기 부끄럽지만, 이를 닦는 게 아니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불에 올리고, 커피 콩을 간다. 커피밀 손잡이를 돌리고 있으면 아직 무겁게 처져 있던 눈꺼풀이 새어 나오는 커피 향에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커피 가루를 프레스에 담고 주전자에서 삐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린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커피 가루 위로 끓는 물을 부으면 가루 위로 송알송알 고운 거품이 인다. 하얗게 피어 오르는 김과 함께 또 한 번 확 풍기는 커피 향이 코를 간질인다. 젖은 커피 향은 마른 콩을 갈 때 나는 냄새와 다르다. 더 아늑하고 넉넉하다. 잠시 기다린 뒤 혀로 누리게 될 작은 호사를 코로 미리 맛볼 수 있는 냄새다.

프레스의 뚜껑을 닫고 타이머를 5분에 맞춰 놓는다. 타이머가 땡 울리면 레버를 누르고 늘 쓰는 커피 잔에 커피를 따른다. 한 모금 입에 머금고 그 신맛과 쓴맛 사이에 숨어 있는 온갖 맛을 혀와 코로 느낀다. 이제 내 눈은 반짝이고 하루를 맞을 준비가 완전히 갖춰진다.

나는 아침에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일을 날마다 치르는 의례로 여긴다. 커피를 마시기까지의 일을 장황하게 적은 것도 나의 모닝커피가 작은 의식처럼 보이기 바라서다. 갈아놓은 커피 원두를 사 전기 커피메이커에 털어 넣고 물을 따르고 스위치를 누르는 것도 커피를 마시는 방법이지만(가공된 인스턴트 커피와 정제된 백설탕, 식물성 유지를 하얀 가루로 가공한 분말 크림들을 넣고 낱개 포장해 포장재의 낭비까지 더한 이른바 ‘커피믹스’는 간편한 커피 마시기의 예로도 아예 넣고 싶지 않다), 의례라면 아무래도 조금 수고가 더해져야 한다.

이렇게 마시는 커피는 물을 끓이는 데 쓰는 외에 다른 에너지는 거의 쓰지 않는다. 프레스는 간단한 원리로 작동하니 유리그릇을 깨뜨리지 않는 한 고장 날 일은 없다. 손으로 원두를 가는 핸드밀도 적당한 것을 장만하면 몇 십 년을 쓸 물건이다. 우린 커피는 체에 거른 뒤 작은 접시에 담아 집 곳곳에 두면 마르면서 가습기 역할을 한다. 말린 커피는 냉장고와 신발장에 두면 잡냄새를 잘 빨아들인다. 냉장고에서도 제 할 일을 다 한 커피 가루를 쓰레기봉투로 보내기 전에 폐식용유를 빨아먹게 한다.

커피가 주는 즐거움을 끊을 수 없다면 가능하면 알뜰하게 이용하려고 시작했다가 이제는 완전히 몸에 밴 나의 습관이다. 처음 커피를 뽑을 때 정성을 들이면 그 정성이 아까워서라도 남은 가루까지 소중히 여길 수 있다. 게다가 커피 농부를 생각하면 커피 한 알을 가벼이 볼 수 없다.

커피는 세계 어디서나 즐기지만 커피 열매를 수확하는 나라는 기후 조건에 맞춰 한정돼 있다. 기호식품인 만큼 소비하는 나라는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곳이며 북반구에 치우쳐 있다. 수입하는 곳에서는 더욱 싸게 수입하려 할 것이고 커피 농가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름다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유기농 커피를 대안무역 규정에 맞춰 네팔 농가에서 수입한 것으로, 다른 수입 원두에 비해 값도 비싸지 않다. 커피는 혀의 호사를 위해 마시는 것인 만큼 나라고 늘상 같은 맛만 볼 수는 없다. 세 번에 한 번꼴로 다른 원두를 찾는데, 이때도 꼭 ‘페어트레이드’ 마크를 확인한다.


글쓴이 조동섭은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