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자식들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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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참척(慘慽)을 당한 에미에게 하는 조의(弔意)는 그게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고,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다.』『그애 없는 세상의 무의미함도 견디기어렵거니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 나 하는 회답없는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더욱 참혹하다.』 지난 88년 졸지에 외아들을 잃은 어느 중진 여류작가는 그 뼈에 사무치는 한(恨)을 후에 이렇게 적었다.
천재지변이 잦고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엔 부모.조부모보다자녀.손자녀가 먼저 죽는 일이 잦았다.그런 일,곧 「참척」을 당하면 부모나 조부모는 세상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먼저 간 자식들을 불효막급이라 하 여 기억속에서하루빨리 지워버리려는 풍조도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이야 어떻든 자식잃은 부모들의 애끊는 심회(心懷)란 막상 당해보지 않고선 측량할 길이 없다.
그런 어버이의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낸 음악으로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정 가곡『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꼽힌다. 다섯 곡으로 돼있는 이 노래의 첫째곡은 오보에와 호른의 고적한 전주(前奏),둘째곡은 아들의 빛나던 눈동자를 회상하는 아버지의 탄식,셋째곡은 비통해하는 어머니의 모습,넷째곡은 위로와 환상이 엇갈린 아버지의 추억,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곡은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에 어린 아들을 묻어야 하는 아버지의 격하고 고조된 감정이 웅장한 관현악곡과 함께 울려퍼진다.
이 음악에서 마지막 부분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죽은 자식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부모의 격정이 가장 절실하게 배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로 한 중학교에서만 무려 42명의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불치의 병에 걸렸던 것도 아니요,천재지변 때문은 더더욱 아닌 불과 몇몇 사람들의 잘못으로 티없이 싱싱하게 자라던 꽃망울 같은 자식들을 잃은 부 모에게 과연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할 것인가.
앞의 여류작가의 글대로 누가 무슨 말로 위로하든 그 자체가 이미 고문이요 수모일는지도 모른다.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로 참척을 당한 부모들의 분노하고 통곡하고 절규하는 모습에서 위정자(爲政者)들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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