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살아있는 대구 시민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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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사흘동안 대구(大邱)는 「통곡의 바다」였다.대구 참사 희생자들을 떠나보내는 영결식장마다 통곡은 넘쳐흘렀다.33명의 학생을 한꺼번에 떠나보내는 영남중학교 노제(路祭)가 있던 날은대구 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민들이 함께 가슴아파 하는 통곡의 하루였다.
그러나 대구시민들은 울고만 있지 않았다.이미 참사 당일 용기있는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위는 돌보지도 않은채 죽어가는 부상자를 등에 업고 병원을 향해 줄달음쳤다.갑자기 몰아닥친 병원에 피가 모자란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병원앞에는 헌혈하 겠다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복구작업을 벌이는 사고현장에는 부녀회회원들이밤샘 봉사를 마다하지 않고 식사대접을 하고 있고,코흘리개 저금통부터 노점상 하루 수입의 전부를 성금으로 기탁하는 대열이 줄을 서고 있다.
대구는 통곡의 바다였지만 그러나 온정의 바다였다.남의 비극과고통을 내것으로 함께 나누고,함께 아파하는 온정의 물결이 넘쳐나는 도시의 모습을 전국의 시민들은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있다.처참한 비극을 온정 넘치는 훈훈한 5월의 신록 처럼 서로를 감싸고 돌보는 대구시민들의 자구(自救)정신이 바로 지방화시대의시민정신과 봉사 정신이 무엇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내것으로 만들고 나누는 봉사와 시민정신의 모범을 대구시민들은 한단계 높은 수준에서 발휘하고 있다.
이 참사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대구의 경제 또한 먹구름이었다.섬유 면직물이 주종을 이루는 대구경제는 만성불황에 수출부진까지 겹쳐 최악의 위기상황이었다.그러나 대구시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기막힌 비극이었지만 어느 누구에게 책임 을 전가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있다.비난과 원망으로 난국(難局)과 위기(危機)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말없는 인내와 협동으로 참사의 뒷마무리를 지어가는 대구시민들의 수준높은 위기관리의식이 대구의 새로운 도약을 일구는 일대 전기로 결집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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